카타리나가 일곱 살이고 엘리사벳이 세 살이었을 때 저, 클라라는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경기도 파주시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처음 성당을 방문했던 날을 기억합니다. 엘리사벳을 유아차에 태워 카타리나와 함께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의 성당에 갔습니다. 성당에 들어가 맨 앞자리에 앉아 세 모녀가 두 손을 모았습니다. ‘이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성당 밖으로 나오니 몇몇 여성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함께 구일기도를 하는 자매님들이라 소개하며, 본당의 새 가족을 위해 기도를 바친다고 하셨습니다. 그날은 구일기도의 마지막 날이었고, 마침 새 가족이 들어와 더욱 반갑다고 하시며, 앞으로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삶 속에서 만나는 이런 기적과도 같은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당시에는 반가움이나 고마움보다는 예상치 못한 환대가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수줍고 민망해 뒷걸음치다, 성당 앞마당 한 구석의 컨테이너를 발견하였습니다. 컨테이너 문 앞에는 전단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이를 교육하기 전에 나를 먼저 교육해요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기 전에 먼저 책을 읽는 부모
아이 잘못을 나무라기 전에 먼저 이해해 주는 부모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워도 주눅 들지 않는 부모
옆집 아이가 잘해도 부러워하지 않는 부모
대안교육의 길을 열어주는 부모가 되기 위해 공부합니다.
어떻게 공부할까요?
어린이책을 읽고 토론합니다.
어른책도 읽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봅니다.
컨테이너는 도서관이었습니다. 컨테이너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에 감탄했습니다. 지역 도서관이 없던 시절, 지역 여성들은 엄마들과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만들고 월 만 원의 회비를 걷어 헌책방과 출판 단지를 돌며 싼 값에 책들을 사들였다고 했습니다. 책들이 쌓이자 서가를 만들고 라벨링해 관리했다고요.
지역 여성들이 뭉쳐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만든 컨테이너 도서관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역 어린이들에게 책을 이용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공연장으로, 사랑방으로, 벼룩시장이나 나눔 장터를 하는 행사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성당 앞마당 컨테이너 도서관을 중심으로 공동 육아와 사교육 없는 자립 교육이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아!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2011년 봄날의 깨달음은 2026년 봄날에도 유효합니다. 그때 컨테이너 도서관을 드나들며 가족이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던 시간은, 장소만 공공도서관으로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날의 깨달음을 기억하며 클라라, 아우구스티노 부부는 함께 가족인문학연구소를 운영하며 널리 가족 독서를 알리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새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가족 독서의 시작을 열어 주신 여성 동지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글 _ 김정은 클라라(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