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 고초골 근처 학일리에서 양봉하는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 수녀님들이 1500만 국민들이 관람했다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여 달라고 성화를 해서 함께 시내에 나가 영화를 관람했다.
16살 나이에 숙부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돼 온 단종, 그리고 마을 호장 엄흥도와 주민들 사이 인간미 넘치는 삶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엄흥도가 단종의 주검을 수습해 선산에 묻었다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슬픈 영화였다.
팝콘을 먹으면서도 눈물을 훔쳐내는 수녀님들과는 달리, 고초골 촌장인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고종으로부터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받은 엄흥도와 비슷한 인생을 살다 떠난 신앙의 선조 ‘이민식 빈첸시오’가 떠올랐다.
고초골 근처 먹뱅이에 살던 17살 청년 이민식은 한국교회 첫 사제로 서품을 받고 돌아온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도와 은이성지를 중심으로 근처 공소인 싸리틔, 미리내, 어농, 고초골, 용바위, 시어골, 한터를 안내하고 미사 때는 복사를 섰던 김 신부님의 말동무였다.
5개월 동안 공소를 안내하고 미사 봉헌을 도왔던 이민식은 경비가 삼엄한 육로 대신 바닷길을 열기 위해 연평도 근처 순위도로 갔다가 관헌들에게 붙잡혀 서울 새남터에서 참수당하고 모래사장에 암매장되었다는 김대건 신부님의 소식을 전해 듣고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누군가는 김 신부님의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새남터로 발길을 재촉하여 올라간다.
이미 돌아가신 지가 한 달이 넘은 신부님을 모셔 오기 위해 지게에 이불을 둘둘 말아 올리고 머리를 감쌀 큰 보자기를 준비하여 새남터에 도착하니 아직도 관헌들이 지키고 있었다. 며칠을 조심히 살피다 관헌들에게 술을 사다 주고 곯아떨어지게 한 이민식은 모래사장을 맨손으로 파고는 썩어가는 신부님의 시신을 모시고 밤으로, 밤으로 남태령을 넘고 하우고개를 넘어 지금의 신덕(은이) 고개와 망덕(해실이) 고개를 지나 애덕(오두재) 고개 앞에 이르게 된다.
신자들과 함께 조용히 장례를 치른 이민식은 자신의 선산인 지금의 미리내에 신부님을 모셨다. 그는 김 신부님을 따라 사제의 꿈을 가졌으나 안타깝게도 그 뜻은 이루지 못했다. 그는 순교자 곁에 묻어 달라는 페레올 주교님과 김 신부님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도 김 신부님 곁에 모시고 92살까지 묘지를 지킨다. 훗날 미리내가 성역화되면서 이민식의 후손들은 선산을 교회에 기증했고, 이민식도 신부님 곁에 묻히게 됐다.
단종의 장례를 치르고 장능에 모신 충의공 엄흥도는 ‘왕과 사는 남자’로 세인들의 관심을 받고 영월은 관광지로 주목받게 됐지만, 아직도 김대건 신부의 남자인 이민식은 신자들에게 잊힌 존재로 미리내 김 신부님 옆에 말없이 묻혀 있다. 먼 옛날이야기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을 뿐 교회에서는 이민식에게 아무런 공적 치하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김 신부님의 유해를 받들어 모신 빈첸시오와 그 후손들에게 마땅히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공로를 치하하는 교회 훈장이라도 추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년 전 원삼본당 주임 겸 고초골 피정의 집 원장으로 발령받아 고초골에 왔다. 이때 만난 이민식의 6대손 이선행 요아킴 회장님은 병자 영성체를 하시며 입에 침이 마르게 이민식의 이야기를 전해주셨고, 그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린 초상화를 보여 주며 대단한 자부심으로 살고 계셨다. 지난해 고초골 마지막 공소회장을 지내셨던 이선행님이 선종하셨고, 지금은 요아킴 회장님의 막내아들이자 이민식의 7대손인 바오로가 피정의 집 관리장으로 고초골을 지키고 있다.
단종의 남자가 엄흥도라면 김대건 신부님과 살았던 남자는 이민식 빈첸시오인 것이다.
글 _ 송영오 베네딕토 신부(수원교구 용인 원삼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