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정치생태사상가인 베르나르 샤르보노와 자끄 엘륄은 「투쟁의 본질 - 성장 신화와 기술 전체주의에 맞서는 생태혁명」에서 “생태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청중은 극소수다. 사람들은 염려만 할 뿐 산성비를 만드는 원인과 대결하겠다는 급진적인 선택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지배에 맞선 네덜란드 독립전쟁(80년 전쟁, 1567~1648)의 지도자 빌럼 판 오라녀에게 흔히 귀속되는 다음의 격언을 환기한다.
“희망할 필요는 없다. 계획하고 행동하면 된다. 성공할 필요도 없다. 끈질기게 버티면 된다.”
당대 최강국인 스페인 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란을 이끈 빌럼 판 오라녀는 즉각적인 승리가 불가능한 상황을 직시하고, 단기적인 희망에 기대어 섣불리 행동하다 절망하는 대신, 장기적인 버티기와 지속의 전략을 택했다. 압도적인 힘의 열세 속에서도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끈질기게 행동한 그의 저항은 훗날 네덜란드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이 격언의 핵심은 희망의 부정이 아니라, 성공이 보장되지 않아도 행동과 지속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의 중요성에 있다.
2015년 국제사회는 파리협정을 통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고, 나아가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였다. 2018년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1.5도 특별보고서」는 현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30~2052년 사이 1.5도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유럽연합(EU)의 기후 감시 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는 2024년이 산업화 이전 대비 약 1.6도 높았던 첫 연도라고 밝혔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삶의 의미와 목적이 극한의 상황을 견디게 하는 내적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의 시대에 인류에게 필요한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일까.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희망을 막연한 낙관이나 위안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았지만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더 나은 세계를 향해 인간과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실천적 힘으로 사유했다.
2024년에 타계한 생태철학자인 존 캅 교수는 인류에게 남은 과제는 상황을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면서 재건을 위한 기반을 얼마나 남기냐는 싸움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생태운동은 성공의 보장이 있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 긴 후퇴와 실패를 견뎌낼 수 있다.
“희망할 필요는 없다”고 한 빌럼 판 오라녀에게도 스페인에 저항한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기후·생태위기에 잘못 없이 노출된 사람들, 미래세대, 비인간 종들과 전체 자연에 대한 책임이 고통과 파국의 가능성을 직시하면서도 끝내 행동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까닭은 더 나은 세계를 낙관하기 때문이 아니라, 책임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글 _ 박태현 요셉 다미아노(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지구법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