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모국어로 미사를 드리며, 하느님 말씀을 모국어로 듣는다. 하지만 ‘소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듣는 사람들, 농인(청각장애인)에게는 모국어로 미사를 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모국어로 말하는 원어민 사제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년 전 첫 농인 사제 박민서 신부(베네딕토·서울대교구 에파타본당 주임)의 탄생은 신앙에 목마른 농인 신자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그리고 지난해 두 번째 농인 사제 김동준 신부(갈리스토·에파타본당 보좌 겸 애화학교 교목)가 탄생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서울대교구 에파타성당에서 우리나라에 단 둘뿐인 농인 사제들을 만났다.
“소리가 없어도 하느님의 사랑은 들린다”
어떤 이들은 ‘미사를 본다’는 말을 두고 미사에 대한 정성이나 마음가짐이 부족한 표현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농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농인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를 ‘봄’으로써 하느님 말씀을 ‘듣기’ 때문이다. 손(手)으로 말씀(語)을 듣는다. 수어의 세상에서는 미사를 ‘보는’ 신자야말로 누구보다도 말씀에 귀 기울이는 신자다.
“수어는 농인들에게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와 감정을 담은 ‘모국어’입니다. 수어 미사는 농인들이 통역 없이 하느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들의 인격과 신앙적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박 신부는 “농인은 시각적 언어를 사용하므로, 전례의 모든 요소가 신앙 전달의 핵심”이라며 “시각적 정성을 다해 농인들이 눈으로 복음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신부도 “에파타본당에서는 모든 성사와 전례가 수어를 기반으로 이뤄진다”며 “이는 농인 신자들이 자신의 언어인 수어로 하느님을 만나고 신앙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박 신부님께서는 서울대교구 사제시지만, 사실상 전국 교구의 농인공동체가 교회 안으로 더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농인들이 단순히 참여만 하는 수준을 넘어,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셨기 때문입니다.”
2007년 박 신부가 서품받을 당시만 해도 농인은 ‘사목적 배려의 대상’이었다. 혼자서는 미사 참례도 어려웠고, 공동체와 함께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김 신부의 말처럼 박 신부의 활동으로 서울뿐 아니라 전국의 농인 신앙공동체에 활기가 더해졌다. 농인은 스스로 전례 봉사를 하게 됐고, 본당 사목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사목의 주체’로 우뚝 서게 됐다.
무엇보다 첫 농인 사제의 탄생은 농인 신자들에게 “우리도 사제가 될 수 있고, 우리 언어로 신앙을 증거할 수 있다”는 선교 의지를 심어줬다. 그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성소도 싹텄다. 김 신부가 사제의 길을 결심했을 때 무작정 찾아간 사람이 박 신부였고, 그 인연이 두 번째 농인 사제 탄생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김 신부는 “박 신부님 덕분에 교회의 변두리에 있던 농인들이 단순히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교회의 중심에 들어와 더 깊이 활동하게 됐다”며 “저도 농인 사목의 선구자인 박 신부님의 길을 이어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두 번째 농인 사제의 탄생, 희망을 전하다
“‘앞으로 농인 사제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첫 농인 사제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듣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농인 사제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죠. 그래서 김 신부님이 사제가 되신 것이 정말 기쁩니다.”
박 신부의 서품이 농인도 사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김 신부의 서품은 농인 사제는 박 신부만의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또 다시 얼마든지 농인 사제가 탄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첫걸음이었다.
박 신부는 “김 신부님 서품은 ‘농인 사제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교회의 지속적인 일원’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평가했다.
두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지만, 동시에 전국 농인 신자에게도 절실한 농인 사제다. 전국 농인공동체에서, 심지어 해외에서까지 박 신부의 방문을 요청하는 곳이 많았다. 또 청인(聽人,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본당이나 단체를 찾아야 할 일도 많았다.
그러다 보면 정작 본당의 농인 신자들을 돌볼 수 없는 것이 박 신부의 안타까움이었다. 하지만 김 신부가 본당에 오면서 서로 번갈아 가며 본당과 외부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게 됐다. 두 신부의 활동으로 비단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의 농인 선교가 더 활성화될 수 있었다.
후배로 함께하게 된 김 신부도 박 신부를 통해 힘을 얻는다. 김 신부는 “선배 사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힘”이라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고민하고,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순간들 속에서 사목의 깊이도 더해지고, 본당 공동체도 더 안정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농인 사제의 존재는 교회가 모든 민족과 언어, 상태를 초월해 하나임을 보여주는 징표”라며 “사제직이 신체적 완벽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에 달려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더 넓은 포용성을 갖추게 한다”고 전했다.
다름을 넘어 함께하는 공동체로
두 농인 사제의 활약으로 많은 변화를 일궈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김 신부는 한 경청 모임의 모습을 예로 들었다. 교회 안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대부분이 그 당사자들이 자리했던 반면, 농인이 아닌 수어 통역 봉사자가 참석해 농인의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이다.
김 신부는 “장애에 대한 감수성도 높아지고 있고, 장애를 지닌 분들을 더 성숙하게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분위기도 곳곳에서 느껴진다”면서도 “사회에 비해 교회 안에서는 이런 변화가 다소 더디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비장애인 중심의 신학교 교육도 미래의 농인 사목을 위해 넘어야 할 벽이다. 벌써 농인 사제가 둘이나 탄생한 서울대교구조차도 농인을 위한 별도의 교수법이나 평가 기준, 이들을 전문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교수 등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농인 사제가 탄생해, 이다음 세대의 농인 사목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농인 성소자·신학생 양성이 필요하다.
박 신부는 “농인이 필담으로 모든 소통이 가능하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한국어와 한글의 관계와 달리) 수어와 글은 마치 제2외국어처럼 서로 달라서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누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여전히 장애인을 ‘배려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분위기도 벽이다. 농인을 비롯한 장애인을 ‘도움 받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자세는 장애인을 ‘우리와 다른 누군가’로 만든다. 농인도 ‘우리 중의 한 명’으로 자연스럽게 섞이는 교회, 본당의 이름 ‘에파타(열려라)’처럼 활짝 열린 교회가 두 신부의 바람이다.
“우리 공동체가 서로의 ‘다름’을 ‘틀림’이 아닌 ‘은총’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각기 다른 아름다움으로 빚어내신 소중한 지체들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장벽을 향해 함께 ‘에파타!’라고 외칩시다. 그 문이 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소리를 넘어선 더 깊은 하느님 사랑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