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손은 바쁩니다. 전 신자가 모여 성당 구석구석을 반듯하고 반질반질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구석은 성당이 생기고 처음으로 손이 닿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40여 년 만에 닦여 나가는 먼지는, 우리가 그동안 ‘내 성당’보다는 ‘마석성당’ 신자였음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쌓아두고 미뤄두며 살아온, 타성에 젖어, 또 새 성당 건축에 대한 막연한 그림에 기대어 정리되지 못한 시공간에서 지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보며 마음이 산란하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무겁고 깊은 짐을 덜어내니 이내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우리를 위해 애쓰는 형제님들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성당 올 때마다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첫 번째 놀라운 일은, 주임신부님께서 성당 안으로 이사를 오신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감실에 계신 예수님과 마당에 서 계신 성모님께 성당을 맡긴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동안 뒤척이시느라 밤이 편치 않으셨을 신부님이 예수님과 한 마당을 쓰시게 된 일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예사모’(예수님을 사랑하는 어르신 모임) 회원분들이 쾌적하고 넓은 공간에서 식사하시게 된 일입니다. 이곳은 회합실과 교리실로도 잘 쓰일 것 같습니다. 따스한 나무 소재로 장식된 실내 벽면 덕분에 본당에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이 외에도 성당 출입문이 자동문으로 바뀌었고, 작은 본당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성가대를 1층으로 옮겨 2층 공간이 생겼습니다. 좁고 어두웠던 고해실은 단골을 삼고 싶을 만큼 편안합니다. 성당 중앙에 깔린 빨간 카펫은 보는 이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교중미사 후 성당에 머무르고 싶게 야외 카페가 정돈되었고, 성수대 옆에 새로이 모셔져 본당의 품격을 높여주신 성모님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오랜 시간 마당을 내려다보며 우리를 지켜주던 십자가가 듬직한 청동제로 바뀌었습니다.
동네 이웃과 함께 쓰던 담을 걷어내고 새로 단장된 모습은 성당을 더욱 단아하게 만듭니다. 성당 구석구석은 물론, 회랑을 대신한 마당의 가제보(Gazebo, 야외 쉼터)는 신자들을 배려하는 본당 신부님 마음을 읽게 됩니다.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감사의 제목들은 하느님께서는 아실 것입니다.
본당 주임 요셉 신부님은 미사 시간 외에는 늘 작업복 차림입니다. 오죽하면 어느 신자가 “마석본당 신자세요?”라고 물었다는 일화에 맘껏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성당을 향한 신부님의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부님의 열정에 화답하여, 물적 기증과 노동의 땀방울을 보태주신 교우 여러분께 지면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죽어서 거듭나라. 죽어라, 그리고 생성하라.”(괴테 「성스러운 동경」 중)
이 말은 인간 정신이 이뤄낼 수 있는 최고의 역동적 도약을 표현한 말이라 합니다. 이제 다시 맞이한 예수님의 부활 시기에, 우리 본당의 새로운 40년이 도약의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부활하신 예수님께 기도드립니다. 아멘.
글 _ 이순일 마리아(의정부교구 남양주 마석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