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세계문학 행사로 DMZ에 다녀온 후, 지워지지 않는 잔상과 말들이 계속 어른거려요. 폭력과 죽음이 낭자한 곳에서 건너온 이들이 용서와 화해, 평화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바로 우리 분단의 현장 DMZ였기에 더 실감 나기도 했는데요. 그 엄중한 땅에서 작은 말의 씨앗을 하나 품어 왔는데 바로 ‘우분투(Ubuntu)’입니다.
초대된 작가 중에 아프리카 소년병 출신의 이스마엘 베아가 있었어요. 그는 서아프리카에 있는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났는데, 내전이 발생하여 12살에 가족을 잃고 소년병으로 징집됩니다. 당시 만 명 정도의 아이들이 소년병이 되었다고 해요. 전쟁에서 “매우 빨리 광기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베아.
살육과 복수의 현장을 전전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죽이고 끝까지 살아남는 법을 배운 그는 우연히 유니세프에 구출되어 전쟁에서 벗어납니다. 보호학교에 다니며 마약을 끊고 아이로 돌아가는 길을 배우고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이제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되어 “모든 아이는 희망입니다”라고 말하는 베아.
이제는 인권운동가이자 작가로 살아가는 베아는 유머가 넘치고 저음의 목소리가 멋졌어요. 저녁 식사 자리에선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 <What a Wonderful World>를 기막히게 불렀지요. 베아는 대담 자리에서 친구 소년병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소년병 친구가 적에게 두 손이 잘렸다고 합니다. 그 친구의 두 손을 자른 병사도 전장에 끌려 나온 소년병이었지요. 그 소년병이 다시 잡혀 와 손 잘린 친구와 대면하게 됩니다.
손 잘린 친구가 묻습니다. “왜 내 손을 잘랐니?” 적 소년병이 대답합니다. “네 손을 자르지 않으면 우리 둘 손을 다 자른다고 해서야.” 친구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다행이네, 네 손이라도 남아 있으니.” 그리고 자기 손을 자른 병사를 용서해 주었다는 이야기.
믿기지 않는 이 생생한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살아있는 예화로 제 머리를 쳤어요.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39-42) 늘 질문이 꼬리를 무는 구절. 무엇이 용서를 가능하게 했을까요?
답은 우분투에 있었어요. 아프리카의 평화 정신을 상징하는 이 말은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 정말 용서하기 힘든 사건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가요. 하지만, 그래도, 끝내, 우분투를 말하는 이를 마주하며 그 말을 따라 하면서 저는 속으로 ‘아멘’ 했습니다. 낮게 엎드리게 되는 말.
전쟁이 인간의 야만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면 소년병의 용서는 야만이 죽이지 못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우분투.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어요. 이 시간에도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생각하며, 희망의 씨앗인 아이들이 다시 웃게 되길 바라며, 새로 배운 말을 홀씨처럼 뿌립니다. 우분투, 우분투.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