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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조력자살과 호스피스 완화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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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족 혹은 가정하면 어떤 모습을 떠올릴까? 아마도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녀로 구성된 3~4인의 가족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한 가족의 모습을 흔히 전통적인 가족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족상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의 근거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소위 정상 가족에 해당하는 3~4인 가구의 비율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1인 가구의 비율은 현재 40를 넘어섰다.


그런데 1인 가구의 비율 증가는 특별히 의사조력자살이나 안락사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와 무관할 수가 없다. 1인 가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돌볼 사람의 부재를 의미하며 이는 병에 걸렸을 때, 안락사가 유일한 해결 방안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돌봄의 문제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의사조력자살이 법제화된다면 가장 먼저 위축될 수 있는 돌봄의 영역이 있다. 바로 호스피스 완화의료이다. 


1967년 최초의 현대적 호스피스 센터를 설립한 시슬리 손더스(Cicely Saunders)는 조력자살과 안락사에 분명히 반대하였으며, 호스피스를 그러한 행위에 대한 도덕적 대안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수년간 조력자살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던 네덜란드의 경우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의사조력자살이 세계 최초로 법제화된 미국 오리건주의 경우 말기 환자의 통증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례가 증가했다. 일정 기간 미국의 다른 주에서는 1832개의 호스피스 시설이 개설되는 동안, 오리건주에서는 고작 5개의 호스피스만 개설되었다. 


조력자살의 법제화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이는 미국의 경우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를 포함한 많은 의료 단체가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호스피스가 애초에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중립적인 생각은 많은 호스피스 종사자가 조력자살이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견해를 더 이상 견지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호스피스 돌봄이나 완화의료가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은 환자의 고통과 통증을 줄여주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타인이 환자와 함께 고통을 겪을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말기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팀, 가족, 돌봄 제공자에게는 그들과 고통을 겪을 기회가 주어진다.


고통을 겪을 기회를 준다는 것이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환자와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은 환자와 함께 그들의 삶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통이 지닌 의미의 발견에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참된 연대성을 실현할 수 있으며 그러한 태도는 이 사회가 참으로 인간다운 사회인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간다움의 참된 척도는 고통과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한 관계에서 중요하게 판가름됩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마찬가지입니다. 고통 받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함께 고통을 겪음’(compassio)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나누고 안으로 견디도록 돕지 못하는 사회는 무정하고 비인간적인 사회입니다. 그러나 개인들 스스로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면 그 사회는 고통 받는 구성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어려움을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38항)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 _ 박은호 그레고리오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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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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