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은 오늘 불안한 인간 영혼을 향해 먼저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요한 14,1) 잘 들어보십시오. 주님은 먼저 세상을 고치려 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마음을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혼란은 먼저 인간 마음의 혼란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겉으로는 살고 있지만 안에서는 자주 무너집니다. 젊은이는 지쳐 있고, 중년은 흔들리며, 노년은 외롭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자기 영혼이 얼마나 목마른지조차 모른 채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은 두려움보다 먼저 희망을 말합니다.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토마스가 말합니다. “주님...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 14,5) 길을 모른다는 이것이 사실 우리 모두의 고백 아닙니까. 우리도 모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이 참인지, 무엇이 끝내 남는 생명인지.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주님은 길을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길이 되어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경이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성으로 길이시고 신성으로 목적지이시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는 길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길이신 분께 자신을 맡기는 존재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는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과부들이 소외되고 불평이 생겨서 공동체가 흔들립니다. 그런데 그런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다시 세워졌습니다. 불평이 있던 자리에 봉사가 생기고, 분열의 자리에서 친교가 태어났습니다. 성령은 무너진 것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다시 세우십니다.
그래서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1베드 2,5)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이건 존재 선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로 세워지는 집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돌입니다. 우리는 무너진 돌이 아니라 세워질 돌입니다. 버려진 돌이 아니라, 성전이 될 돌입니다. 외로운 이여, 당신은 고립된 존재가 아닙니다. 하느님 안에서 아무도 고아가 아닙니다.
이처럼 공동체의 분열은 사랑의 질서로 치유되고, 봉사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교회의 몸을 세우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놓일 때 집이 됩니다. 성령은 혼란을 버리지 않고 질서를 세워주십니다. 그리스도는 모퉁잇돌이고, 신자들은 그 위에 놓이는 산 돌입니다.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흩어진 마음은 무너진 돌 같지만, 주님 안에 놓이면 성전이 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백치」에서 미시킨 공작의 입을 통해 속삭입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아름다움입니까?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아름다움, 상처 입고도 사랑하는 아름다움, 십자가를 통과한 아름다움 곧 그리스도의 얼굴. 그리고 이제 조용히 말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영혼은 아름답습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폭력 앞에서 온유를 지키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세상은 힘으로 버티는 듯 보이지만 사실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숨은 기도, 어머니의 눈물, 이름 없는 자비입니다.
「필로칼리아(Philokalia)」(기도와 내적 고요 수행, 특히 마음의 기도와 정화의 길을 다룬 교부·영성가들의 글을 모은 선집)는 말합니다. “흩어진 마음을 주님의 이름 안에 모아라.” 이 얼마나 깊은 처방입니까. 마음이 모이면 평화가 생기고, 평화가 생기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과거에 있었고 현재도 진행되며, 미래에 있을 세계의 전쟁도 인간 내면의 전쟁도 같은 뿌리를 가집니다. 분열입니다. 그러므로 내적 고요는 도피가 아니라 평화의 시작입니다. 지친 젊은이여, 절망하지 마십시오. 길은 있습니다. 불안한 중년이여,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는 중입니다. 외로운 노년이여, 하느님은 당신 안에 거처를 마련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은 힘으로 구원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구원됩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기도입니다. 이제 침묵 안에서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님, 하느님의 아드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침묵) 주님, 흩어진 마음을 모아주시고 우리를 살아있는 돌로 세우소서. 기도가 평화가 되고, 평화가 세상의 구원이 되게 하소서. 아멘.” 세상은 논쟁보다 기도로, 힘보다 아름다움으로, 지배보다 자비로 살아남습니다.
글 _ 곽승룡 비오 신부(대전교구 태안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