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과 우울증은 전문의를 찾아 상담과 진료로 치유되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오늘은 성경에 뚜렷이 등장하는 경우를 통해 그 극복의 길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셀레우코스 왕국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os IV Epiphanes)가 저지른 권력 남용 사례를 지난 주간에 들려드렸습니다. 유다 민족을 말살하려던 계획이 수포가 되고 부하 장수들이 잇따라 패배하자, 그는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봅니다.
“도대체 내가 이 무슨 역경에 빠졌단 말인가? 내가 이 무슨 물살에 휘말렸다는 말인가? 권력을 떨칠 때에는 나도 쓸모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1마카 6,11) 그러다가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찾아냅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그곳에 있는 금은 기물들을 다 빼앗았을뿐더러, 까닭 없이 유다 주민들을…”(1마카 6,12)
안티오코스는 다시는 유다 민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가망이 없음을 직감하고는 절망에 이릅니다. 그는 친지들을 불러 진심을 털어놓습니다. “내 눈에서는 잠이 멀어지고 마음은 근심으로 무너져 내렸다네.”(1마카 6,10) ‘내 눈에서는 잠이 멀어지고’는 불면증 호소이며 ‘마음은 근심으로 무너져 내렸다네’는 우울증 호소입니다.
다른 원인에서 오는 불면증과 우울증에는 치료 방법이 따로 있겠지만, 전쟁광 안티오코스의 치료제는 ‘회개’뿐일 테죠. 그 회개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요.
2001년 여름 전국 신학부 교수 모임 때, 통풍으로 양쪽 발이 퉁퉁 붓고 아파서, 거실에서 불과 70여m 떨어진 모임 장소조차 걸어가지를 못해 암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저는 2003년부터 십일조 정신으로 살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도, 또 우울감이 짙어 올 때도 자꾸만 은혜로운 일을 떠올립니다. 안경을 개발한 분들, 신발을 만들어 준 분들, 농어민, 자동차나 옷을 만들어 주는 분들, 의료진, 도로 건설, 건축가, 그리고 갖가지 생활용품을 만들어 주는 분들…. 제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고마운 분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그러면 이웃과 타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 부족했던 사랑과 배려에 죄송한 마음, 이제라도 아껴 주고 덮어 주고 감싸 주고 갚아드리고 싶은 마음도 차오릅니다. 그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축복을 빌어드리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도 몸도 가벼워지더군요. 이같이 은혜로운 마음이 우리 영혼 깊숙이 자리 잡게 되면 꿀잠도 자게 되고 행복한 마음도 그만큼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 특별 희년입니다. 희년의 기본 정신이 다음 구절에 들어있습니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이다.”(레위 25,23)
참된 회개는 자기 책망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도 감사를 찾을 줄 아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설령 어둠 속을 걷고 있어도 ‘하느님 곁에 머무르는’ 매 순간이 얼마나 기적과 같은지 묵상해 봅시다. 그때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알 수 없는 힘에 귀 기울이며 점점 익숙해져 봅시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 아물어 갈 터입니다.
글 _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원로사목·성사전담, 성서주석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