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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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가족은 먹이고 돌보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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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족을 두고 흔히 ‘방귀를 튼 사이’라고 말합니다. 우스갯소리지만 가족의 본질을 꽤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가족은 서로에게 가장 편안한 사이입니다. 숨길 것도 체면도 없이 서로의 습관과 약점까지 아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가족은 서로에게 엉겨 붙어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몸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여러 호르몬이 작용합니다. 자극을 찾게 하는 도파민, 만족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 스트레스 때 분비되는 코르티솔 같은 것들입니다.


그 가운데 ‘사랑 호르몬’이라는 별칭을 가진 호르몬이 옥시토신입니다. 옥시토신은 손을 잡거나 포옹할 때, 신뢰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분비됩니다. 옥시토신이 충분히 분비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안정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군가와 연결될 때 안정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가족은 특별한 공동체입니다. 서로에게 끌리는 힘과 서로를 살리는 책임이 함께 살아 있는 관계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두 사랑을 에로스와 아가페로 설명합니다. 에로스는 서로에게 끌리는 사랑이고, 아가페는 자신을 내주는 사랑입니다. 가족은 이 두 사랑이 함께 작동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랑은 감정일 뿐만 아니라 서로를 살게 하는 관계의 방식입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면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부활의 첫 장면은 놀라울 만큼 평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교리를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숯불을 피우시고 물고기와 빵을 준비해 놓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행동은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그 식사 뒤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세 번 명령하십니다. 전례용 성경에서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번역했습니다만, 원문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리듬이 있습니다.


“내 어린 양들을 먹여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먹여라.”


예수님은 먹이고, 돌보고, 다시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보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동사’로 보여 주십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살게 하는 행동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차려 주고, 지친 사람을 돌보며,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일입니다. 생각해 보면 가족의 사랑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족의 사랑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행동으로 이루어집니다. 함께 식탁에 앉고, 서로의 하루를 묻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나누는 일입니다.


우리는 경쟁과 성취를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이루라는 압박이 우리를 몰아붙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은 경쟁이 아니라 사랑에서 옵니다.


그래서 가족은 특별합니다. 서로에게 끌리는 사랑과 서로를 살리는 책임이 함께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에로스와 아가페가 함께 어우러진 사랑, 그것이 가족의 근간입니다.


어쩌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전하신 사랑의 메시지도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먹이고, 돌보고, 다시 먹이는 사랑. 그것이 가족을 이루는 관계의 방식입니다.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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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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