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움브리아주 스폴레토(Spoleto) 남쪽, 해발 800m에 자리한 몬테루코(Monteluco)는 ‘산’을 뜻하는 Monte와 ‘성스러운 숲’을 뜻하는 lucus에서 유래했습니다. 수백 년 된 상수리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들어서면, 이름에 담긴 의미를 모르더라도 사방에서 밀려드는 거룩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신성한 숲은 기원전 3~2세기에 제정된 ‘스폴레토 숲의 법(Lex Luci Spoletina)’에 따라 보호되어 왔습니다. 스폴레토 지역의 신성한 숲에서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한 이 법은 최초의 산림법 가운데 하나로도 여겨집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기원후 5세기부터는 시리아에서 온 수도자들이 성지 안에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경당을 세우고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베네딕도 규칙서를 따르던 수도자들은 이 경당을 은둔 장소로 이어 오다, 1212년 이곳을 처음 방문한 프란치스코에게 사용하도록 내어주었습니다. 1218년 프란치스코는 초기 형제들과 함께 카타리나 경당 주변에 나뭇가지와 진흙, 석회로 독방들을 만들고, 은둔 생활과 공동 기도 생활을 함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선교 활동에서 벗어나 은둔하기 위해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1205~1206년, 그가 기사 복장을 하고 제4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기 위해 풀리아주로 향하던 길에 스폴레토에서 처음 신앙의 소명을 느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만난 장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듯, 스폴레토에서 들은 주님의 음성은 프란치스코가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걸어갈 수 있게 한 힘이었을 것입니다.
15~16세기 건물들로 둘러싸인 사각 정원의 몬테루코 성지 입구를 지나면, 프란치스코가 기적적으로 물을 솟아나게 했다고 전해지는 우물이 나옵니다. 그 옆에는 ‘프란치스코의 기도소’라고 불리는 경당이 있습니다. 초기 형제들이 사용했던 다른 공간들처럼 이 경당도 본래 자연 동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경당 안 제대를 받치고 있는 돌은 프란치스코가 기도할 때 무릎을 꿇거나 잠을 잤던 자리로 전해집니다.
우물 왼쪽으로는 프란치스코의 초기 형제들 때부터 1960년대까지 사용한 독방들이 이어진 좁은 복도가 나옵니다. 성지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은둔 생활에 관한 규칙서를 작성했는데, 그 안에서 강조한 것은 홀로 고립되는 고독이 아니라 형제애였습니다. 은수자는 셋이나 넷을 넘지 않도록 했고, 두 사람이 마리아처럼 주님 곁에서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보내면, 나머지 두 사람은 안주인처럼 그들을 보호하고 음식을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역할을 바꾸어 모두가 하느님을 찾는 일을 우선하도록 한 것입니다.
가로세로 2m 크기의 작은 방 일곱 개로 지어진 은둔소에는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방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좁은 창문으로 희미한 빛만 들어옵니다. 푹신한 침대 대신 널빤지가 놓여 있고, 바닥에는 몇 가지 물건과 함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나무문이 있습니다. 결국 모든 방이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마치 시간이 800년 전에 멈춘 듯 모든 방에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눈을 감으면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 방들은 수 세기에 걸쳐 여러 성인과 복자들이 짧게는 며칠, 길게는 오랜 기간 머물렀던 자리입니다. 성 보나벤투라(1217~1274),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1195~1231),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1380~1444), 파올루치 트린치(1309~1391)를 비롯해 이름 없는 많은 수도자가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그들이 이곳을 찾은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다가도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 아버지 하느님을 만나셨던 것처럼, 형제들도 이 거룩한 숲에서 스스로 고독을 택했습니다. 이 고독은 하느님을 기다리고 만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홀로 머무는 시간입니다.
그중 성 안토니오는 1221년 시칠리아 여행 중 이 은둔소에 머물렀습니다. 그의 이름은 지금도 숲속 깊은 곳, 접근하기 어려운 동굴 가운데 하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몬테루코 성지에 성 안토니오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1232년 5월 30일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바로 스폴레토 대성당에서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를 시성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몬테루코 숲의 신성한 분위기는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듯합니다. 숲에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험준한 바위 능선 사이에 보물처럼 숨겨진 작은 동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동굴들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와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를 비롯한 여러 성인이 머물렀던 곳이며, 그들은 이곳에서 온전히 은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숲속 끝 전망대에서는 스폴레토 계곡의 푸르름에 둘러싸인 스폴레토 마을, 요새, 두오모 대성당 등 역사적 중심지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광활한 풍경은 프란치스코의 영혼에 깊은 감명을 주었고, 그는 벨베데레 벽에 새겨진 것처럼 “nil iucundius vidi valle mea spoletana(스폴레토 계곡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보지 못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