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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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자리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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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4-7 참조)


한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성경 말씀 속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보라는 권고였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려 보았다. ‘나는 참고 기다립니다. 나는 친절합니다. 나는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 대신 내 이름을 넣어 문장을 완성해 나가던 순간, 내 안에서 거대한 저항이 일어났다.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라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머릿속은 나 자신의 성찰이 아닌,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한 사람의 얼굴로 가득 찼다.


“내가 참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먼저 참았어야지. 내가 변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아프게 한 그 사람이 먼저 사과하고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끄럽게도 내 마음의 첫 번째 순위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나’가 아니라, 여전히 ‘남의 탓’을 하며 그가 변화하기만을 바라는, 그것이 우선이라 믿는 심판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준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준 상처를 하나하나 들춰내며 마음의 수첩에 기록하고 있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는다는데, 나는 그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스스로를 향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주님. 저라는 사람은 아직도 이토록 멀었나 봅니다.”


꽃이 피고 세상이 부활의 생명력으로 반짝이는 이 시기에, 정작 내 마음은 무덤처럼 여전히 원망과 미움의 돌덩이로 굳게 닫혀 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나에게 잘해주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 가시를 돋친 이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참된 부활의 길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는 말씀은 어쩌면 상대의 잘못을 견디는 것보다, 그를 미워하고 싶은 내 안의 본능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넣어 그 구절을 읽으셨을 때 느끼셨을 그 겸손과 고뇌가 오늘 제 마음에 낮은 울림으로 전해진다.


“주님, 제 안의 ‘나’를 비우고 그 자리에 주님의 사랑을 채우기가 이토록 힘이 듭니다. 아픈 상처를 건드리면 비명이 터져 나오듯, 상처 준 이를 떠올리면 사랑보다 억울함이 먼저 앞섭니다. 하지만 오늘 이 아린 마음마저도 주님 앞에 봉헌합니다. 저의 힘으로는 도저히 저 문 뒤의 빗장을 풀 수 없기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닫힌 제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 주시기를 청합니다.”


“제가 변해야 세상이 변하고, 제가 먼저 사랑해야 주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붙듭니다. 올봄,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저 꽃들처럼 제 안의 미움도 녹아내려, 언젠가는 부끄러움 없이 ‘사랑’의 자리에 제 이름을 넣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날을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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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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