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유럽은 아직 겨울 끝자락이었다. 포르투갈의 파티마, 프랑스의 루르드, 벨기에의 보랭과 바뇌 등 네 곳의 성모 발현지를 취재하는 내내 한 가지 물음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왜 아이들이었을까.
1858년 루르드의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열네 살이었다. 아버지는 실직한 방앗간 주인, 가족은 폐기된 감옥 창고에서 살았다. 1917년 파티마의 세 목동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야친타는 겨우 열 살, 아홉 살, 일곱 살이었다. 양 떼를 몰던 산골 아이들이었다. 1932년 벨기에 보랭의 다섯 아이와 바뇌의 마리에트 베코도 다르지 않았다. 공장 노동자의 딸, 가난한 농부의 자녀들. 세상이 눈길조차 주지 않던 아이들이었다.
마리아 역시 로마 제국의 변방, 갈릴래아 지역 나자렛의 가난한 처녀였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곳, 아무것도 아닌 신분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바로 그 낮은 자리를 들어 쓰셨다. 발현지의 아이들은 그 선택의 연장선 위에 있는 듯했다.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그 아이들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루르드의 샘물은 지금도 수백만 순례자의 발길을 모은다. 파티마의 기도 요청은 교회 전체를 관통해 흐른다. 보랭에서는 "착한 아이들이 되어야 해"라는 단순한 말이, 바뇌에서는 "나는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야"라는 한 마디가 그 발현지 영성의 뿌리가 되었다. 아이들의 입을 빌렸지만, 세상을 향한 말씀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에 성모님이 찾아가실 아이들은 누구일까. 가난하고, 무시당하고, 세상이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그 자리, 어쩌면 그곳이 지금도 발현의 자리일지 모른다. 마리아는 언제나 낮은 곳을 먼저 아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