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7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사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아빠 베드로는 이제 전화를 받지 못합니다. 스마트폰이 울리면 초록색 동그라미를 오른쪽으로 밀기만 하면 된다고 엄마 소피아가 백 번을 넘게 말해도 소용없답니다. 이제 팔순이 넘은 베드로는 이미 수년 전에 인지장애 판정을 받았고 작년에 치매 판정을 받았습니다. 


클라라는 늘 베드로가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다고 경기도 파주에서 경상남도 밀양까지 그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갈 수는 없기에 영상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전화를 받지 못하니까 소피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화면 속 아빠 베드로는 한겨울에나 입을 법한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엄마 소피아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느그 아빠 니가 사 준 옷 입고 있다, 지금”, “니 첫 월급 받았을 때 백화점에서 사 준 옷 있다아이가.” 첫 월급이라니요. 그때가 언제인지 까마득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중간고사 마치고 첫 직장에 취업했으니 1998년 늦가을이었을 것입니다. 


첫 월급을 받고 나서 샀다면 정확히 27년 전 한겨울이었을 텐데, 그 옷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니요. 이제 완연한 봄 날씨인데, 베드로는 계절을 상관없이 27년 전의 그 따뜻한 온기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 클라라가 사 준 옷, 우리 클라라가 사 준 옷…” 하면서요.


하느님께서 손수 지으셨기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


각자 가진 고유의 아름다운 어떻게 찾고 사랑해야 할까


저, 클라라는 베드로가 정신이 또렷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제가 베드로의 노후에 대해 걱정하면, 베드로는 “나는 건강하게 타고났는데도 나이가 들어서 (건강 상태가) 이 모양인데, 니는 약하게 타고났으니 나이가 들면 더 힘들끼다. 니 걱정이나 해라”라고 했고, 제가 소피아의 노후에 대해 걱정하면, 베드로는 “느그 엄마는 내가 잘 챙길끼다. 그러니까 니는 니나 잘 챙기라” 했었습니다.


그랬던 아빠 베드로가 이제 엄마 소피아 없이는 전화도 받지 못하는 갓난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의 마음만큼은 생애 가장 기뻤던 순간에 머물러 있는 듯했습니다. 약하게 타고난 딸 클라라가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구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진정한 성인이 되었던 그날, 어쩌면 클라라가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마음을 놓았을 그 순간 말이지요.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지혜 11,24)


지혜서를 읽고 묵상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기도 지향은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빠, 베드로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며 어떻게 사랑을 나누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베드로의 일과는 제가 사 드린 옷을 입고 집 앞 골목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쓰레기를 줍고 빗자루로 깨끗하게 좁은 길을 쓰는 일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몸을 깨끗이 씻고 하루하루 생을 정돈합니다. 그 모습에서 젊은 베드로가 매일 어린 클라라의 구두를 닦았던 모습을 봅니다. 사랑은 소멸해 가는 존재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베드로가 참 아름답습니다.



글 _ 김정은 클라라(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5-1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5. 17

집회 2장 15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분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분의 길을 지킨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