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는 얇은 유리 벽 같았다. 췌장암 3기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1년 6개월의 시간을 버텨오신 마르코 고모부님. 항암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회복의 끈을 놓지 않으려 직접 운전대를 잡고 한의원을 다니시던 그 간절한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끔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를 나누실 때면, 젓가락을 움직이는 그 평범한 손길조차 우리에겐 회복을 기원하는 마음이었다. 우리 집에서 마지막이 되어 버린 식사를 하고 나가실 때 고모부님은 고백하셨다. “무섭다, 참 무서워.” 떨리는 목소리로 남기신 그 말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본원적인 두려움이었다.
그 후 며칠 뒤 간 기능의 저하와 함께 찾아온 쇼크는 순식간에 고모부님을 의식 없는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병원에서 마주한 초점 없는 눈동자를 보며 나는 ‘이별’을 직감했다. 매일 묵주기도로 고모부의 영혼을 보호해 주십사 청했고, 미사 때마다 그의 영혼을 주님 손에 맡겨드렸다.
그러던 중 기적처럼 의식을 회복해 식사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달려간 병실에서 식사를 마치시고 해맑게 웃으시는 고모부. 부은 손을 잡고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기도하며 눈시울이 자꾸 붉어졌지만, 그 눈물의 의미는 주님께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주님, 이렇게 고모부와 함께 기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신 후, 아내와 함께 찾아간 마지막 면회 날. 그날의 기억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장면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침대에 누워 계신 고모부님. 황달로 눈은 색이 변했고 여기저기 터진 실핏줄과 부은 손. 그 모습에 마음이 무너지면서도 우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뵙지 못했던,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해맑은 웃음을 봤다. 마치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아이처럼, 근심 하나 없는 천진난만한 그 미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그 웃음을 마주하는 순간, 오히려 위로를 드려야 할 우리 부부가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 미소는 “무섭다”던 한 인간의 두려움이 주님의 평화에 완전히 잠겼음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인간의 의술이 멈춘 곳에서 주님의 자비가 완성되었다. 고모부님은 당신의 영혼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며 죽음이라는 파도를 넘어서고 계셨다. 그리고 며칠 후 주님께 가셨다.
이제 고모부님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정거장을 지나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음에도 내 마음이 이토록 잔잔한 것은, 고모부님이 보여주신 그 해맑은 미소가 주님의 약속임을 믿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절벽이 아니라, 주님의 손을 잡고 영원한 빛의 나라로 건너가는 아름다운 과정임을 고모부님은 온몸으로 가르쳐 주셨다.
“주님, 저 또한 제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고모부님처럼 해맑은 미소로 장식하게 하소서. 죽음이 끝이 아님을 믿으며, 주님의 품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소망하게 하소서.”
부활의 햇살 속에 마르코 고모부님을 주님께 돌려보내 드렸다. 이제는 두려움도, 통증도 없는 그곳에서 주님의 얼굴을 마주하며 영원히 미소 짓고 계실 고모부님을 위해, 남겨진 우리는 다시금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