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내게 다가온 변화는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변화였으며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세계의 경험이었다. 혼자의 삶을 살아가던 나에게 결혼을 하고 연년생으로 아이 둘을 낳으며 누군가와 끊임없이 동행해야 하는 삶으로의 변화였다.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그동안 했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본당에서 하고 있던 교중미사 지휘와 밤에 주로 했던 성음악 강의도, 그리고 얼마 전까지 아이들과 숨을 쉬고 노래를 부르며 하느님의 소리를 전달하려 끊임없이 노력했던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두 아이를 낳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에는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합창단 어머님들도 도와주시고 “괜찮다, 계속하시라”며 응원의 메시지도 주셨지만, 나만 바라보고 나만 의지하는 20여 명의 아이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10여 년간 아이들과 함께했던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수원가톨릭소년소녀합창단. 유학 후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찾아온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누군가 맡고 있던 합창단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었고,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 가야 하는 합창단이었다. 그야말로 새롭게 창단하는 단체였다.
그때 내 나이 서른넷. ‘얼씨구나 좋다’라는 생각으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하느님 사랑을 전하는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선뜻 시작할 수 없었다.
매달릴 곳은 하느님밖에 없었다. 한 달간의 기도와 주변 분들의 설득, 그리고 내 안에서 밀어내는 마음과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잘 이끌어 나가면, 내가 떠나는 날 이 단체를 또 누군가가 잘 이끌어 가지 않을까, 그럼 천천히 역사를 만들어 나가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수원가톨릭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하는 여정이 시작됐다.
여느 합창단과 달리 아이들에게 라틴어 성가를 부르게 했고 무반주 폴리포니를 가르쳤다. 물론 이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로마의 시스티나 합창단과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합창단처럼 전례 안에 스며드는 합창단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그 일을 하고자 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 나를 쉼 없이 흔들었고, “그냥 편히 하자, 다른 합창단처럼 애들이 부르는 거 하지, 뭘 그렇게 고생하느냐”라는 주변의 소리도 끊임없이 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것도 교구 소속 합창단이라면 뚜렷한 목적과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끝까지 고집스럽게 10년을 이끌어 왔다.
그 10년 동안 아이들은 처음엔 뜻도 이해하지 못하는 성가들을 하나씩 불러가며 하느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건강하게 자라났다.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또한 주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을 잘 걸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도 있었고, 중도에 떠나간 아이들도 있었고, 웃으며 졸업한 아이들도 있었다. 쉽지 않은 여정에 함께해 주었던 수원가톨릭소년소녀합창단의 모든 아이에게 가장 행복한 하느님의 길이 열리길 조용히 기도해 본다.
글 _ 오선주 루치아(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콘체르토 안티코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