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 번의 ‘고별사’(요한 13~16장)와 한 번의 ‘고별기도’(17장)를 남기셨습니다. 이때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요한 14,16) 보호자 성령을 약속해 주셨지요. 예수님의 고별사 안에서 보호자 성령에 대한 약속은 모두 네 번 등장합니다.(요한 14,16-17; 14,26; 15,26; 16,7-15)
복음서에서 ‘보호자’로 번역되는 ‘파라클레토스(παρ?κλητο?)’는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여기 옆으로(παρα) 오라고 살갑게 부르는(καλ?ω) 것을 뜻하는 동사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ω)’에서 유래합니다. 당시 유다교 회당에서 추방당하거나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 숨어지내야 했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곁에 머물러 주시겠다는 이 약속이 얼마나 큰 용기와 위안이 되었을까요.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시어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라고 인사하셨지요. 그런 다음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별사를 통해 약속하셨던 보호자 파라클레토스는 바로 ‘성령’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신 행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라는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요한복음이 숨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로 사용한 그리스어는 ‘엠퓌사오(?μφυσαω)’입니다. 엠퓌사오는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 이곳에만 유일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그 유래나 성경의 다른 용례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어근에 해당하는 ‘퓌사오(φυσ?ω)’는 생명을 산출하고 자라게 한다는 뜻의 동사 ‘퓌오(φ?ω)’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숨을 불어넣는 것이 곧 생명을 움트게 하고 생장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엠퓌사오는 한 생명체가 자라나고 형성되기까지(φυσ?ω) 그 과정 안(?ν)으로 들어간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지요.
엠퓌사오 곧 ‘숨을 불어넣어 주셨다’는 것만으로도, 예수님이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그들을 다시 살게 하셨다는 것이 충분히 표현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고 한 번 더 말씀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영’을 가리키는 단어는 ‘프네우마(πνε?μα)’입니다. 프네우마는 창조 때 사람에게 불어넣으신 ‘생명의 숨’(창세 2,7)과 태초에 땅이 아직 꼴을 갖추기 전,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을 적에, 그 물 위를 감돌고 있던 ‘하느님의 영’(창세 1,2)을 가리킬 때 사용된 말이지요.
프네우마는 바람처럼 스며드는 하느님의 숨결로, 생명을 생명이도록 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요, 모든 생명체의 힘의 원천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내쉬는 숨이나 호흡과는 또 다른 차원의 숨결입니다. 인간과 모든 피조물은 이 생명의 숨결로 말미암아 비로소 ‘숨’ 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숨만 쉰다고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말하듯 내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경우가 있지요. 제자들은 믿었던 스승 예수가 처참하게 돌아가신 후 더 이상 살아갈 이유와 삶의 근거를 잃었습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스승을 배반한 죄책감과 온갖 두려움으로 순간순간 숨이 막혀 제대로 숨 쉴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이 내쉬는 숨이라 해 봤자 온통 좌절의 한숨과 슬픔의 탄식뿐이었습니다. 꺼져가는 그들에게 숨통을 트이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모든 숨의 근원이신 생명의 숨뿐이었습니다.
생명의 숨, 그것은 성령입니다. 하느님의 영, 그분의 숨결, 프네우마, 그 거룩한 성령이 우리의 숨구멍을 통해 들어옵니다. 성령은 우리의 두려움을 몰아내고 희망의 숨결로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우리가 숨 쉬는 한, 우리는 그분 사랑의 숨결인 성령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이나 우리의 숨보다 하느님의 힘과 하느님의 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성령을 청하십시오.
글_ 김정일 안드레아 신부(의정부교구·서울대교구 대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