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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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아리고 쓰린 고개마다, 함께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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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의 한 성당 벽에 예수님이 고개를 넘고 계십니다. 골고타의 길이 정선의 산길 위로 옮겨 온 듯합니다. 원주교구 정선본당은 지난 3월, 정선아리랑과 예수님의 수난을 잇는 ‘골고타 아리랑 십자가의 길’을 축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선의 산길을 오르시고, 그 길 위에 아리랑 가락이 얹힙니다.


본당 주임 이동훈(프란치스코) 신부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에 오르셨다면, 아마 아리랑을 부르셨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마음 한쪽이 젖어 듭니다. 아리랑은 흥겨운 노래이기 전에, 고개를 넘는 노래입니다. 돌아갈 수 없는 길, 혼자 견디기 어려운 길,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 넘어야 하는 길에서 흘러나온 노래입니다.


정선아리랑에는 깊은 한이 배어 있습니다. 척박한 산골의 삶,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못하는 마음이 긴 가락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아리랑은 절망의 노래로만 남지 않습니다. 부르는 사람의 숨을 타고, 듣는 사람의 가슴을 지나, 함께 견디는 노래가 됩니다.


아리랑의 힘은 여기에 있습니다. 아픔을 없애 주지는 못하지만, 아픔을 혼자 두지 않습니다. 아리고 쓰린 마음 곁에, 아리랑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붙입니다. ‘나’의 고통이 ‘너’에게 건너가고, ‘너’의 한숨이 ‘우리’의 노래가 됩니다. 사랑은 때로 이런 작은 합창에 가깝습니다.


복음서에도 그런 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신 뒤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마태 26,30; 마르 14,26)고 전합니다. 배신과 죽음이 다가오는 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노래하시고, 그 노래를 품고 수난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이 찬미가를 시편 136장과 연결합니다. 이 시편은 창조와 탈출, 사막과 해방의 역사를 노래하면서 절마다 같은 후렴을 붙입니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험한 기억에도 자비의 후렴을 붙이는 것, 그것이 신앙의 노래입니다.


가족의 시간에도 그런 후렴이 필요합니다. 가족은 아픔이 없는 자리가 아닙니다. 서로의 아림과 쓰림이 가장 가까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쉽게 서운해지고, 익숙한 얼굴 앞에서 깊이 침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평화가 아닙니다. 아픔 뒤에 다시 붙이는 후렴입니다.


실망 뒤에 다시 말을 거는 일. 상처 뒤에 다시 식탁에 앉는 일. 마음이 닫힌 밤에도 내일 아침밥을 차리는 일. 미안하다는 말이 아직 나오지 않아도, 밥상 위에 숟가락 하나를 다시 놓아주는 일. 사랑은 늘 뜨거운 감정으로 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반복으로 옵니다. 같은 자리에 다시 앉고, 같은 이름을 다시 부르며, 관계의 고개마다 다시 ‘함께’라는 가락을 붙이는 일로 옵니다.


정선의 고개마다 아리랑이 흘렀듯, 우리 가족의 고개마다 어떤 노래가 흘렀는지 돌아봅니다. 기쁜 날의 노래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아프고 서러운 날에도 끝내 함께 불렀던 노래인지 모릅니다.


아리고 쓰린 생의 고개마다, 우리 가족은 아직 서로의 이름을 다시 부르고 있는지요?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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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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