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원을 졸업하는 학생이 논문을 들고 학교 앞으로 찾아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하느님 말씀을 전하겠다고 하네요. 자주 신실한 기도를 전하는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신이 하는 ‘말’이 늘 두렵다고 하네요. 성경은 ‘하느님 앞에 인간의 눈물로 쓰인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는, 신앙의 길을 올곧게 걸어온 친구가 이런 말을 할 때, 저는 동시에 글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했어요. 말도 글도 다 밖으로 나오는 것. 타인에게 전해지는 것. 타인의 귀와 눈에 들어가는 것. 금방 휘발되기도 하지만 가시처럼 박히기도 하는 것.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소명 앞에서 두려움을 고백하는 청년이 너무 해맑고 기특해서 제가 무슨 말을 했던가요. “나도 그래. 나도 늘 두려워.” 우리는 잠시 말을 잊었어요. 그런데 또 거기서 멈출 수는 없지요. 천천히 말을 이어갔어요.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컴퓨터의 흰 화면, 노트의 빈 공백, 늘 겁이 나. 그런데, 또 그럴 때마다 생각해. 두려우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정직하게 일단 쓰라고 늘 내게 당부해. 그러니 너도 두려움 속에서 정직하게 말하면 되지 않을까? 정직함은 곧 신실함에서 나오니 기도가 두려움을 가시게 할 거야.”
이 칼럼을 쓰면서 자주 제자의 고백을 떠올립니다. 나는 지금 신실한 글을 쓰고 있는지. 좋은 말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이 혹 주제넘은 욕심은 아닌지. 그러다 또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제게 힘을 주는 치유의 경험도 합니다. 이번에도 그랬어요. 감기로 3주 정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무척 고생했는데, 그 와중에 수업을 간신히 이어가고 성경 말씀을 읽고 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글을 읽었습니다.
좀 힘에 부친다고 생각하던 중에 어느 강의에 초대해 주신 신부님께서 “몸이 회복되는 속도에 맞추어” 살아가란 말씀을 해주셨어요. ‘아, 마음과 몸의 속도가 다를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하다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건넨 한마디, “건강해지고 싶으냐?”(요한, 5.6)란 물음이 생각났어요. 벳자타 연못가에 누워 있던 이들,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들 가운데 그토록 오래 앓은 이가 힘이 없어 연못에 못 내려간다고 하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요한 5,8) 그는 곧 건강해져서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고 하지요.
말이나 글이 가시가 되기도 하지만 진심 어린 염원을 담은 말은 곧 그대로 전해져 누군가에게 새 힘을 주고 또 자신에게로 되돌아옵니다. 고향으로 간 제자는 믿음의 말씀을 전하고자 간곡한 기도를 청하면서 제게도 가끔 소식을 전해옵니다. 긴 감기를 떨치고 일어나면서 오늘도 들것을 들고 잘 걸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요즘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한 분들께 마음으로 안부를 전하면서요.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