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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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청소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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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한 분 하느님이시지만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신비입니다. 삼위일체는 인간 이성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삼위일체를 단순히 ‘이해해야 할 어려운 교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야 할 ‘하느님의 삶’으로 가르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모세는 시나이산으로 올라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금송아지를 만들며 하느님을 배반했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이렇게 드러내십니다.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이는 구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하느님의 자기 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먼저 전능함보다 자비를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을 무서운 심판자로 상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느님의 가장 깊은 중심이 자비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그 앞에 엎드려 말합니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걸어가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복음이 말씀하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습니다”라는 것은 삼위일체 신앙의 핵심이며 그리스도교 전체를 요약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세상’은 단순한 자연만이 아니라 때로 하느님을 거부하는 인간 세계까지 포함합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그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사랑의 신비입니다.


저는 얼마 전 교구에서 인공지능(AI)에 관련된 사제연수에 참여하여 AI에 대한 장점과 문제점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영성과 가장 극한이 되는 물성의 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AI는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빠릅니다.’ ‘물음에 답을 완성합니다.’ AI가 ‘인간의 뇌를 닮게 만들었다’ 해서 인공지능일 텐데, 현대의 바벨탑 곧 하느님의 자리에 오르고 있는 신격 모사처럼 보였으며, 인간이 하느님의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이 1만 년 동안 읽을 책의 단어를 48시간 만에 읽어댄다니, AI는 수학입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문학적 가치와 특히 신학적 가치로 검증하지 않으면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을 간파했습니다. 연수의 마지막 메시지는 AI와 대화하지 말고, 필요한 때만 도구처럼 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AI가 불가역적 사건이고, 기왕에 하느님을 닮으려면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따랐으면 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삼위일체의 성부께서는 성자를 내어주시고, 성자께서는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시며, 성령께서는 그 사랑을 우리 마음 안에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닫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친교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성부는 성자를 향하고, 성자는 성부께 응답하며, 성령은 그 사랑의 일치라고 설명합니다. 


즉 삼위일체의 중심은 고독한 힘이 아니라 사랑 안의 관계입니다. 동방 교부들은 이것을 ‘페리코레시스’라고 불렀습니다. 즉, 서로 안에 머무시는 사랑입니다. 성부는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는 성부 안에 계시며, 성령은 그 사랑 안에서 일치하십니다. 삼위일체 안에는 경쟁도 없고, 지배도 없으며, 고립도 없습니다. 완전한 자기 증여와 완전한 사랑의 일치만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추상적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세상을 구원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느님의 가장 깊은 뜻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하지만 AI는 하느님의 뜻과 충분히 반대로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신앙의 핵심을 다시 봅니다. 삼위일체는 혼자 계시는 분이 아니라 친교의 하느님입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을 하느님과 그리고 서로 연결하시는 분입니다. 


삼위일체는 사랑의 방식입니다. 가정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자기주장만 하면 일치는 깨집니다. 그러나 서로 들어주고, 기다려 주고, 용서해 줄 때 사랑은 살아납니다. 본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사랑을 배워가는 공동체입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때 흩어진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하나가 되고, 우리는 마침내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평화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글 _ 곽승룡 비오 신부(대전교구 태안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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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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