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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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잠을 자든 깨어 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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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와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열정적인 학생은 고민이 많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어떤 일에 크게 분노하는 학생을 마주하며 생각했어요. “너는 이 에너지로 뭐든 하겠구나. 다행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 기준이 있으니 남에게 나약하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분노를 공부로 가뿐하게 태우자고 이야기하니, 아이는 웃습니다.


학생들은 교수와 학교에 큰 기대를 겁니다. 신자들이 신부님이나 수녀님께 큰 기대를 걸듯이. 아이가 부모에게 기대하듯이. 


“봐, 여기 학교가 있지? 학교는 이상적인 공간이 아니야. 그러면 얼마나 좋겠냐만. 학교도 그냥 세상이야. 세상에는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많잖아. 더 배웠다고 더 좋은 인격을 갖추는 것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알지? 높은 자리에 있다고 더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면 세상이 무던하니 잘 돌아갈 것 같지만 또 그렇지 않은 게 세상의 매력 아닐까?” 


“저는요. 적어도 디그니티(dignity)는 지키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맞아, 네 분노는 네 자존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면역세포야. 잘 작동하고 있네. 우리가 공부하는 게 존엄을 지키려고 하는 거잖아. 부당한 일에 분노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아주 잘하고 있네. 네 분노는 정당하니 겁낼 필요 없어. 내게라도 말해줘서 고마워.” 


며칠 잠을 설쳤다는 학생 얼굴이 밝아집니다. 그 분노가 옳다고 믿지만 거기 너무 에너지를 뺏기길 원치 않기에 다시 당부합니다. 


“그러니 너는 네 공부를 하면 돼. 미리 결과를 예측해서 조바심 낼 필요는 없어.”


집에 돌아와 책을 읽다가 이 구절을 만납니다. ‘그대가 잠을 자든 깨어 있든’ 그다음에 무슨 말이 올까요? 네가 잠을 자든 깨어 있든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뭐 이런 이야기 말고요. 


“그대가 잠을 자든 깨어 있든 하느님은 당신 일을 하신다.” 


13세기 독일의 신비주의 사상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씀입니다. 열다섯 나이에 도미니코회에 가입하고 활동하다가 파리로 가 프란치스코회와 논쟁을 통해 명성을 얻었지만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분.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오늘 읽은 책 속에서 만난 구절은 그대로 제게도 힘이 됩니다.


‘그대가 잠을 자든 깨어 있든 하느님은 당신 일을 하신다’는 말씀은 하느님의 순수와 불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다면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릴 필요가 없습니다. 일희일비하며 애태울 필요가 없습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성마른 조급함으로 휘둘릴 필요도 없고요. 


그 믿음은 나를 온전히 비우게 하고 그 비움은 곧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의 바탕이 됩니다. 


“이 과정이 모두 공부라 생각하고 묵묵히 걷다 보면 어제의 분노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날이 와. 알았지?” 


단순한 믿음은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그 단순한 믿음으로 우리는 오늘 하루도 잘 건넜습니다. 다 감사합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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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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