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의 초입,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공원을 달리던 그날의 절박함을 기억한다. 너무 답답해서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 달렸다. 긴 광야의 삶, 보이지 않는 안개를 걷는 듯 희망이라곤 없는, 어디론가 숨고 싶고, 답답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어 뛰고 또 뛰었다.
탈출구를 찾으려 무작정 다이얼을 누르고 지도 신부님과 한 통화는 내 삶의 밭을 새롭게 일구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날 이후 6개월 동안 매주 이어온 신부님과의 면담은, 내 마음에 자리 잡았던 절망의 밭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은총의 과정이었다.
신부님께서는 이 모든 만남이 내가 간절히 희망했기에 이루어진 선물이라 말씀하셨고, 나는 그 가르침을 등불 삼아 성실히 걸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매달렸던 희망의 이면에 사실은 무서운 집착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집착이 주인이었던 내 마음에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어”라는 두려운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 비로소 손에 쥔 힘을 빼고 주님 앞에 고백했다.
“주님, 저는 희망합니다. 하지만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려놓음 뒤에 찾아온 평화 속에서 어느 날 성당의 십자가를 바라보았을 때, 예수님의 음성이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 그 말씀은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희망은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 믿음은 다시 나를 흔들림 없이 걷게 했다.
그러던 중, 작년 우리 가족은 ICPE 공동체 40주년 행사를 위해 폴란드로 향했다. 평생 서약을 앞둔 우리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한 그 여정은 주님의 세심한 안배 그 자체였다. 큰아이의 기말고사 일정 때문에 서둘러 귀국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공동체의 배려 덕분에 우리 부부만 따로 평생 서약 미사를 하게 된 것이다. 미사가 시작되고 신부님께서 향을 치시는 순간, 내 영혼을 관통하는 강렬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이제 광야는 끝났다.”
제대 뒷벽에 그려진 광야의 천막과 숫자 ‘40’ 로고를 바라보며, 나는 신부님의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지난 세월 걸어온 고단한 광야의 길이 떠올랐다. ‘아, 정말 끝났구나.’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감사와 충만함이 차올랐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평생 서약의 자리가, 실은 내 인생의 긴 광야를 마감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입성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나를 지도해주셨던 신부님께서 5월이면 아일랜드로 먼 길을 떠나신다. 신부님도 희망을 이루신 것처럼, 나 또한 주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의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 이 희망은 나를 더욱 가난한 마음으로 이끈다. 무언가에 집착하던 마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하루하루를 선물로 여기는 감사가 채워졌다.
더는 초조해하거나 떼쓰지 않는다. 그저 내게 주어진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때가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집착을 버리고 희망으로 채워진 이 가벼운 마음, 하루를 온전히 감사로 봉헌할 수 있는 지금 이 삶이야말로 주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고 희망이다.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을 향해 걷는 이 걸음걸음마다,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하시리라 나는 믿는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