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때의 일입니다.
개학을 며칠 앞둔 어느 수요일, 오전 미사를 마친 뒤 약속이 있어 서둘러 버스를 타러 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다소 빠듯했던 터라 발걸음이 급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버스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 버스를 타면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 것 같았고, 놓치면 늦을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문제는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는데, 급한 마음과 달리 보행자 신호등은 빨간불이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속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며 무단횡단을 했습니다. 분명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버스 정류장에는 조금 전 성당에서 복사를 섰던 초등학생 친구가 서 있었습니다.
그때 제 얼굴은 빨간 보행자 신호보다 더 붉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저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학사님이 그래도 돼요?”
짧은 질문이었지만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당시 저는 학부 3학년을 맞아 수단을 입고 본격적으로 하느님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스스로 꽤 중요한 사람이 된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던 시기였습니다.
하느님에 대해 배우고,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행동은 횡단보도 앞에서 만난 그 아이보다도 미성숙했습니다. 그 경험은 저 자신을 돌아보게 했고, 신앙과 사목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배우는 이유는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닮아가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고, 삶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사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신학을 공부하고, 청소년과 관련된 소임을 맡으며 사목을 한다는 것은 문자로 배운 하느님을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닮아가며 삶으로 신앙을 증거하고,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청소년들에게 보여 주는 일입니다.
청소년들은 우리가 전하는 말보다 살아가는 모습을 먼저 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보다, 얼마나 하느님을 닮아 살아가고 있는지를 통해 신앙을 배웁니다.
결국 청소년 사목은 무엇을 더 많이 가르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먼저 어떤 신앙인이 되어 그들 앞에 서 있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모습 안에서 청소년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닮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키워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일 것입니다.
예수 성심 성월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말보다 먼저 사랑으로 다가가고, 삶으로 드러나며, 끝까지 기다려 주는 마음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이 그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고 닮아갈 수 있도록, 우리 역시 먼저 예수님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우리를 통해 하느님을 발견하고,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본당의 모든 공동체가 삶으로 하느님을 드러내 주기를 바랍니다.

글 _ 이규성 요셉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