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톨스토이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첫째는 지금 여기, 둘째는 옆에 있는 사람, 셋째는 그 사람에게 잘해 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바로 내 옆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옆의 사람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때로는 미워하면서 내 옆에서 밀어냅니다. 다른 것이 더 좋다면서 밀어내기도 합니다. 또 나와 같지 않다고 밀어냅니다. 그래서 가장 귀한 것들이, 내 안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본당 교우, 그밖에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귀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언제 귀할까요? 지금 그 귀함을 깨달아야 하는데, 먼 훗날에 그들이 내 옆에 있지 않을 때 비로소 깨닫습니다. 저의 경우도 부모님께서 주님 곁으로 가신 뒤에야 얼마나 귀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알게 되어 행복했을까요? 아닙니다. 그 귀함을 보지 못했음에 후회하게 되었고,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 주는 것이 가장 귀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었고, 예수님께서 직접 그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고 시작합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단순히 불쌍히 여긴다는 것이 아니라,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연민을 느끼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은 지금 상처받고 억눌린 인간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타락한 종교, 정치 지도자들을 통해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기에, 오히려 율법의 무거운 짐만 지웠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착한 목자로 다가가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사랑으로 다가가십니다. 그들이 가장 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열두 명의 사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완벽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눈으로는 부족함이 더 많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로마에 세금을 가져다 바치는 세리 마태오도 있었고, 로마에 무력으로 항거하던 민족주의자 열혈 당원 시몬도 함께 있었음을 봅니다.
이렇게 지향점이 다른 사람을 제자로 뽑으시고, 심지어 당신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까지 명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완벽한 의인들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나약함과 실패의 가능성까지 품고 있는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거저 받았을 뿐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거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뜻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특히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임을 잊어버리고, 대신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온 힘을 기울이곤 합니다. 내가 지금 기쁘고 행복한 것이 가장 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탈출 19,5)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야 주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미니코회 신학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하느님은 언제나 준비되어 계시지만, 우리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하느님은 우리 가까이에 계시지만, 우리는 그분에게서 멀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준비됨을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에 있는지를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너는 하느님을 믿어?”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럼. 나는 매주 성당에 다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그러면 하느님께 기도 많이 하겠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그 사람은 더 말하기 힘들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기도는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할 모든 준비를 마치셨고, 또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이제 우리의 움직임이 필요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그 뜻을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과 함께할 주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글 _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성 김대건본당 주임, 인천가톨릭대학교 카펠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