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눈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느님이 정교하게 짜 놓으신 거룩한 타임라인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얼마 전, 지난 1년 6개월간 내 절망의 밭을 희망으로 일궈주셨던 영적 지도신부님께서 아일랜드로 떠나셨다. 이제 홀로 직면해야 할 큰 파도 앞에 선 듯한 막막함이 밀려왔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그 주 토요일 성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고해를 보던 중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나의 고해 내용을 가만히 들으시던 본당 주임신부님께서, 미사가 끝난 후 사무실 앞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신앙생활을 하며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미사를 봉헌하는 내내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마주 앉은 신부님 집무실에서의 면담 시간. 신부님께서는 내 교적까지 미리 받아놓으신 채 한 시간가량 깊은 대화를 나눠 주셨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건네셨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매일 새벽미사를 나오면 좋겠어.”
사실 나는 이미 매일 오전 10시 미사에 참례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것만으로도 내 영혼에는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다. 가끔 본당에 갈 때마다 새벽미사를 강조하시던 주임신부님의 말씀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면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속에 주님께서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마련해 두셨다는 잔잔한 울림이 일었다. 나를 이끌어주시던 신부님이 외국으로 떠나시자마자, 주님께서는 지체 없이 또 다른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내 영적인 과정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보는 말씀 카드에도 ‘허접한 그릇’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꽂혔다. ‘이쯤 하면 됐지’ 하는 나의 허접함을 주님께서 복된 그릇으로 바꿔주시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제 밖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기에 나를 준비시켜 주시는 느낌이 들었다.
신부님께서는 매일 봉헌할 미사의 독서와 복음을 미리 10번씩 읽고 오라는 영적 숙제를 주셨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성무일도를 바치고 5시30분까지 성당에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에, 전날 밤 미리 말씀을 10번씩 읽고 묵상한 뒤 잠자리에 들기로 마음먹고 실천에 옮겼고 그런 힘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드렸다.
그전에는 부담스러운 10번 읽기가 며칠 만에 10번을 넘어 그 이상을 읽고 또 읽는 나를 보면서 그 능력도 함께 주시는 주님께 감사했다. 그날의 말씀 중 내 마음에 온 일부 말씀이다.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2베드 3,12-17 참조)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를 봉헌할 때, 전날 읽었던 말씀들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꿈틀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을 앞당기는 것은 나보다 주님께서 더욱 기다리신다는 마음과 그러기 위해서 오류에 휩쓸리지 말고 흠 없고 티 없이 평화로이 주님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정진하라고 이 새벽 주님은 오늘도 나를 깨우신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