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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딱 한 시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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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 여름처럼 달아오른 햇살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어요. 너무 더우니 나가지 말까? 책상 앞에서 밀린 일들을 바지런히 해치웠지만 아직 일은 밀려 있고요. 오늘 끝내야 하는 일을 마치려면 그냥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새 신발을 신고 있네요.


약속을 잘 어기지 못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몸이 먼저 나서길 원하는 것 같아요. 출발하면서 제가 무심코 말했어요. “우리 딱 한 시간만 스마트폰 끄고 걷자.” 친구도 흔쾌히 좋다고 하네요.


여름 산은 생각보다 덥지 않았어요. 습도가 높을 줄 알았는데, 숲 그늘 속 대기가 적당히 촉촉해서 큰 숨을 쉬었지요. 둘 다 지독한 독감에서 겨우 해방된 터라 말도 줄이고, 스마트폰도 주머니에 넣고 그냥 뚜벅뚜벅 걷기만 한 그 시간, 우리는 무엇을 보고 나누었던가요.


오후 햇살 속에서 싱그러운 초록으로 짙어진 여름 숲을 거니는 일이 그대로 큰 은총이었어요. 익숙한 길이니 지도를 볼 필요도 없었고, 풍경 사진을 찍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걸어온 길.


“집 뒤에 이런 산이 있는 건 너무 좋아.” “그러게.” 


“아무 한 것도 없이 공짜로 이런 축복을 누리네.” “네가 왜 한 게 없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 너는 지구에 공헌하는 게 많아.” 


“아니야. 닥치니까 부지런히 하는 일들이 많은데 때론 무슨 의미인지 모를 때가 많아.” “그래 맞아. 나도 그런 느낌 들 때가 많아. 뭐하면서 살았는지 모르겠어.”


40년 넘은 세월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내는 사이란! 새롭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고민을 너무 잘 아는 우리. 우리는 딱히 특별한 이야기도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걷고 헤어졌어요.


저는 일이 많았고, 친구는 들어가서 저녁을 해야 하니까요. 사고로 엄마가 다치셔서 간병을 도맡은 친구는 노년의 육체를 바라보는 슬픔과 그럼에도 하루하루 인내 속에서 많이 배우는 이야기를 했고, 지난겨울 아버지를 떠나보낸 저는 상실로만 생각되던 그 이별이 상실도 이별도 아님을 이야기했고요.


“우리 딱 한 시간만” 하고 나선 그 길에서 우리는 평소의 한 시간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치유와 위로의 선물을 받았네요. 친구가 그러네요. 자기도 나올까 말까 고민했다고. 그런데 “우리 딱 한 시간만”이 자기를 구했다고. 요즘 번아웃으로 힘들어하는 아이에게도 이 신비를 말해주겠다고요.


얼마 전 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칠은으로 ‘공경’을 뽑은 친구와 ‘슬기’를 뽑은 저.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나눕니다. 


“부모님 모시랴 봉사하랴 넌 공경이 생활인데 또 공경을 뽑았어? 내 것 가져.”


“너는 늘 공부하고 읽고 듣고 지혜를 쓰고 나누는데 또 슬기야? 내 것 할래? 근데 이것도 은근히 어렵다.”


앞으로도 지칠 때면 주저하지 말고, ‘우리 딱 한 시간만’ 아니, 같이 만나지 못해도 ‘나 딱 한 시간만’ 이 빈 시간을 주자고 약속하며 돌아온 저녁. 이 글은 그 시간의 선물입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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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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