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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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빚은 신앙] 성가가 기도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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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어릴 때 성가에 관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성가를 잘 부르지 못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고,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에도 흥미가 없었습니다. 물론 미사에 참여하면 이왕 참여했으니 성가라도 열심히 불러 보자는 생각은 있었지만, 단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시간이 좀 지나 어떤 친구가 뜬금없이 제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지나가는 말로 한 이야기였을 수도 있지만, 저는 태어나서 처음 들은 칭찬에 우쭐해지기도 했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내 목소리가 정말 좋다면 성가도 잘 부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성가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불러 보게 됐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력이 금방 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하면서 성가에 아주 작은 흥미를 느낄 수 있었고, 성가에 집중하고 머무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성가에 관심을 가지던 중, 성당에서 활동하면서 미사 안에서 성가를 부를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성가를 부르면서 행복을 느꼈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마음이 진정되기도 했습니다. 신자분들과 함께 성가를 부른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잘해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분들과 함께 성가를 부른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혼자 부르는 성가보다 함께 부르는 성가가 더 기뻤습니다. 마치 저와 함께 기도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제게 정말 힘든 일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을 많이 하고, 힘도 더 빠집니다. 함께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제 삶은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자분들 안에서 함께하는 것은 제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그 안에서 용기를 얻고, 하느님을 멀리하지 않게 됐다고 말해야 할까요.


사회생활 안에서 저는 종종 하느님을 거부하거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곤 합니다.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제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합니다. 어느 때는 그런 것이 편하고 큰 부담도 없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다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마치 사랑을 떠난 사람처럼요.


오히려 기도, 나아가 성가를 부르고 찬양하는 것이 큰 기쁨을 주고, 삶을 살아가는 데 많은 양분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지 말입니다. 제가 부르는 성가가 기도가 되어, 듣고 계시는 신자분들의 기도와 함께할 수 있다면 더 큰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의 시작은 사소했고, 더 생각해 보면 순간적인 생각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리저리 움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과 하느님께서 그런 저를 도와주시고, 이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두 번 기도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하신 말씀으로 전해지는 말입니다. 제 부족한 기도가 두 배가 되어 하느님께 닿을 수 있다면, 저를 보시고 다른 분들도 기도하는 데 도움을 받으실 수 있다면, 저는 지금보다 더 기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 _ 조성욱 루카(수원교구 찬양사도협의회 ‘루카와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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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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