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매년 6월 25일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낸다. 한반도 분단의 현실과 한국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남북통일 기원미사를 봉헌하고, 6월 17일부터 미사 전후로 9일 기도를 바친다. 81년이라는 오랜 분단의 역사만큼, 가톨릭신문은 6·25전쟁 전부터 현재까지 북한교회의 소식을 전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가톨릭신문은 분단 이전 북한교회 모습도 담았다. 1931년 6월 1일자(제51호)는 평안북도 중강진본당 신설 소식을 알렸다. 기사는 “이곳에는 4~5년 전 처음으로 교우가 생겼으나, 교통이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지역이어서 그동안 사목자를 모실 수 없었다”며 “남녀 교우들이 중심이 돼 신부의 부임을 환영했다”고 밝혔다. 1932년 10월 1일자(제67호)는 평양본당에 스카우트의 전신인 가톨릭 소년군이 창립됐다고 보도했다.
한국전쟁 당시 참상도 상세히 실었다. 1950년 11월 10일자(제84호)는 전쟁 발발 이후 순직하거나 납치된 성직자의 현황을 소개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1951년 1월 14일자(제85호)는 1950년 11월 1일 국군이 압록강을 진격한 소식과 이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수복한 영토를 다시 빼앗긴 아쉬움을 기록하고 있다. 이후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전쟁과 관련한 소식을 전했다.
휴전 이후에는 종교 탄압을 겪는 북한교회를 위한 기도를 요청했다. 1960년 4월 3일자(제223호) 사설은 “북한 신자들은 분명 판공성사를 떠올릴 것이고, 지난날의 본당 신부를 그리워할 것이며, 부활이 가까워졌음을 알려 주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를 기억할 것”이라며 “북한에 남아 있는 교우들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북한 땅에서 봉헌된 분단 이후 첫 미사의 감격스러운 순간도 취재했다. 가톨릭신문은 1985년 9월 22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당시 원주교구장이던 고(故) 지학순(다니엘) 주교가 주례한 한국순교성인 대축일(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미사 현장을 찾았다. 9월 29일자(제1474호)는 지 주교의 “해방 직후 모든 성직자가 순교해 40년간 미사가 없었던 평양에서 미사를 집전하게 돼 의미가 깊다”며 “103위 순교성인과 무수한 순교자의 희생으로 이 땅에 평화가 올 것이라 기대한다”는 강론을 인용했다. 또한 지 주교가 여동생 지용화 씨를 37년 만에 상봉한 일도 덧붙였다.
이후 북한 유일의 성당인 평양 장충성당이 1988년 준공된 소식(1989년 3월 12일자, 제1646호), 미국 가톨릭 관광단의 장충성당 방문기(1989년 4월 2일자, 제1649호)도 게재했다. 이 밖에도 남북 신자 첫 통일세미나(1995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최창무(안드레아) 대주교의 한국 고위 성직자 첫 북한 사목방문(1988년)을 비롯해 한국교회 주교단의 방북, 평양 ‘평화봉사소’ 축복식, 남북 정상회담 등도 기사에 담았다.
올해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1500차 미사를 기념하는 소식을 보도하고, 북한이 남북을 두 국가로 규정한 헌법 개정과 통일부가 발간한 「2026 통일백서」를 교회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남북 관계의 길을 모색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