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간 생명은 특별히 생명의 시작과 끝, 가장 생명이 취약한 순간에 위협받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낙태와 안락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특별히 생명과학의 발전과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 위협의 강도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결정권’은 근래에 와서 낙태와 안락사(의사조력자살)의 법제화를 두고 가장 중요한 근거처럼 작용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안락사에서 자기결정권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종식할 수 있는 ‘죽을 권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고, 낙태에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까지 좌우할 수 있는 권리로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태아는 더 이상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세포 덩어리 혹은 여성의 자궁의 일부로 왜곡됩니다. 만약 여기에 자살이라는 문제까지 더해지면 대한민국은 인간 생명이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자기결정권’의 이름으로 일생 위협에 시달리는 독특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중요한 가치도 아니고 단지 개인의 ‘자유’가 이토록 강조되고 있다는 것은 지금 한국 사회가 여러모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함께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동의하는 객관적 가치의 상실은 개인과 사회의 방향성 상실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그저 다수의 의견에 따라가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선포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최근 서울대교구 생명의 신비상을 수상한 교황청 자문위원 파올로 베난티 신부는 수상 소감에서 인공지능 시대를 경고하며 “다수(Majority)가 곧 진리(Truth)는 아니다”라는 분명한 소신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의 순교자들을 언급합니다. 한국의 순교자들은 스스로 깨닫게 된 진리를 굳게 간직하며 신앙이 없는 대다수의 군중 속에서도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보여 주었습니다.
대다수의 의견을 거스르고, 시류를 거스르고, 인간 생명을 억압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거슬러 홀로 진리를 외쳤던 한 군인의 역사적 결단이 최근 매스컴을 통해서 보도된 바가 있습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자국민을 향한 무력 진압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했던 제38집단군 사령관 쉬친셴 소장의 일화가 그것입니다.
최근 비밀이 해제되어 유출된 1990년 그의 군사재판 영상 속에서, 그는 삼엄한 압박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자신의 소신을 밝혔습니다. “차라리 목이 잘릴지언정 역사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라는 그의 외침은 ‘진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고 있고, 그 진리를 선택하는 모습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비록 소수일지언정 진리를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선택은 그저 한두 명에 불과하니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수를 거슬러 내려지는 선택, 시류를 거슬러 내려지는 선택이야말로 그 어떤 선택보다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결코 다수결로 결정될 수 없습니다.
윤리는 통계가 아닙니다. 보편적 진리를 따라 산다는 것은 다수의 의견이나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외치는 것은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진리를 선포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겠습니다.
글 _ 박은호 그레고리오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