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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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사랑은 부탁을 듣고 감사를 말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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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끼리 이런 말, 한 번쯤 해 보셨지요.


“왜 또 늦었어?”


“맨날 내가 다 해야 해?”


“됐어, 말해 봐야 소용없어.”


겉으로 들으면 불평이고 짜증이며 때로는 비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곧장 방어합니다. “나도 힘들어.” “그 말투가 뭐야.” 말은 금세 말과 부딪히고, 마음은 더 깊이 숨어 버립니다.


비폭력대화의 창시자 마셜 B. 로젠버그는 말의 밑바닥이 대개 두 가지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하나는 부탁이고, 다른 하나는 감사입니다. 투박한 말 안쪽에도 ‘들어 줘서 고마워요’라는 감사와, ‘나를 봐 주세요’라는 부탁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게 하심에 감사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청합니다. 미사 안에서도 우리는 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신앙의 언어는 감사와 청원 사이를 오가는 언어입니다.


가족의 대화도 그렇습니다. 다만 가족 안에서는 이 단순한 언어가 자주 뒤틀립니다. “됐어, 알아서 할게”라는 말 밑에는 ‘챙겨 줘서 고마웠어’라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또 늦었어?”라는 말 밑에는 ‘나는 당신을 기다렸어’라는 부탁이 있습니다. “맨날 내가 다 해야 해?”라는 말 밑에는 ‘나도 좀 쉬고 싶어’라는 요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가족의 말을 너무 빨리 판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르고, 서로의 몫을 계산하다 보면 말의 겉만 듣고 그 밑의 마음은 놓칩니다. 가족 사랑은 거칠고 어지러운 말속에서도 내 곁에 머무는 존재의 부탁과 감사를 식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그렇게 들으셨습니다. 눈먼 바르티매오가 길가에서 자비를 청하며 외쳤을 때, 많은 이들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멈추어 서십니다. 사람들은 소란을 들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소리 안의 청을 들으셨습니다.(마르 10,46-52 참조)


가족 안에서도 작은 전환이 필요합니다. 비난처럼 들리는 말 앞에서 잠시 멈추어 묻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지금 내게 무엇을 부탁하고 있을까?’


그리고 하루가 끝날 때 조용히 다시 묻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 고마웠는데 말하지 않았을까?’


감사는 관계를 당연함에서 선물로 되돌리는 말입니다. 밥을 차려 준 일, 기다려 준 일, 말 없이 곁에 있어 준 일은 너무 익숙해서 쉽게 사라집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먼저 말해야 합니다. “오늘 고마웠어.” 그 말 하나가 닫힌 마음을 조금 엽니다. 내가 먼저 건넨 감사가 상대의 입에서도 다른 감사를 불러냅니다. “나도 고마웠어.” 이렇게 말의 방향은 조금 달라집니다.


사랑은 늘 큰 고백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도와줘”, 때로는 “고마워”라는 말로 옵니다. 많은 날에는 그 두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침묵과 한숨과 투정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뭅니다. 그래도 거기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어설픈 말들 속에서 남아 있는 부탁을 듣고, 오래 미루어 둔 감사를 다시 꺼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가족의 말들 속에서 어떤 부탁을 듣고, 어떤 감사를 미루고 있을까요?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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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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