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간 가톨릭신문에 글을 연재하며 내 삶의 파편들 속에 숨어 계시던 주님의 손길을 기록할 수 있었던 시간은 참으로 복된 축복이었다. 마지막을 정리하는 오늘, 내 마음에 가장 깊이 새겨진 단어는 바로 ‘초대’다.
주님께서는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언제나 당신을 향해 걸어오라며 새로운 선택의 길로 이끄셨다. 세상의 잣대와 시선 속에서 ‘쓸모’를 증명하려다 지독한 우울증이라는 삶의 바닥을 쳤을 때, 주님은 나를 가장 먼저 ‘치유와 회복’의 자리로 초대해 주셨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마태 3,17 참조) 이 말씀은 나의 영적 이름표이고 정체성이다.
문화선교로의 초대, 내가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탈렌트를 온전히 주님을 위해 쓰고 싶다고 바쳤던 청원기도를 들어주신 주님은, 이후 10년 동안 나를 교회 안의 문화선교로 이끄셨다.
광야로의 초대, 수없이 포기하려던 배우의 삶을 아주 가는 빛으로 이어가 주시며, 그 끈을 잡고 깜깜한 앞길을 더듬거리며 따라오라고 하신 광야로 나를 초대하셨다. 내 길을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그 거친 길에서도 돌보셨고, 만나를 먹이시며 언제나 내 곁을 함께 걸어가 주셨다.
희망으로의 초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공원을 달리며 절망하던 2024년 가을, 1년 6개월간의 영적 면담을 통해 희망의 문을 열어주신, 내 삶에 기쁨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신 희망으로의 초대였다.
허접함에서 완성으로의 초대, 저를 이끌어주던 영적 스승이 머나먼 아일랜드로 떠나고 찾아온 마음의 빈자리, 주님께서는 지체 없이 나를 ‘매일 새벽 미사’라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영적 심연으로 초대하셨다. 고요한 새벽어둠을 뚫고 제대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은 내 마음을 한없이 낮고 가난하게 만들고, 게다가 미사가 끝난 후 교우들과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누며 가감 없이 삶을 고백하는 시간은, 내 개인의 신앙에 머무르게 하지 않으시고 ‘참된 공동체로의 초대’로 완성해 가시는 주님의 세밀한 손길이었다.
그 모든 초대의 순간들이 늘 평탄하고 명쾌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답답했고, 때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막연함과 두려움에 떨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모든 막막함이 실은 나를 더 좋은 길로 이끄시려는 하느님의 훈육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성실하시고 완전하신 분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한 가지 확신이 자리 잡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던 순간조차도 주님은 당신의 선을 향해 나를 이끌고 계셨다.
과거를 거룩하게 기억하기에 오늘을 기쁘게 걸을 수 있고, 또다시 펼쳐질 미래를 희망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의 그 성실하심을 온전히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는다. 기도의 청원조차도 조급한 집착이 아니라 설레는 희망으로 기대한다.
돌이켜보면 무언가에 집착했다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불신이 내 안에 믿음처럼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임을 알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동안 늘 집착했고, 초대에 거부했으며, 내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이루려다 뜻대로 안 되면 좌절하고 무너졌다. 스스로 무너지니 타인을 쉽게 비판했고, 종국에는 내 존재 자체를 미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주님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내게 주어진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은총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집착이 올라오면 바로 주님께 봉헌하며 내 약함을 고백한다. “주님 저라는 자 여전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희망과 믿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은총을 입고, 여전히 깨지기 쉽고 허접한 질그릇과도 같은 나 자신을 봉헌하며, 이 볼품없는 질그릇 안에 주님의 은총이 또다시 가득히 내려지기를 기대하고 희망한다.
“그동안 부족하고 서툰 저의 신앙 여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 읽어주신 모든 교우분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마다 주님의 평화가 늘 가득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