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이기주의가 확산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는 ‘이익 중심주의’가 팽배해짐에 따라, 인간 내면의 도덕적 지침인 양심의 목소리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무엇이 옳은가”라는 근본적 질문보다 “무엇이 나에게 이득인가”라는 도구적 합리성에 매몰되어 있으며, 이는 공동체의 윤리적 기반을 위협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론을 검토하는 것은 현대인의 도덕적 주체성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토마스는 인간이 선을 지향하고 악을 피하기 위해 내면의 주관적 확신과 객관적인 자연법적 이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를 정교하게 분석했다.

‘양지’와 ‘양심’의 구분과 역할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도덕적 판단 구조를 보편적 원리인 ‘양지(良知, synderesis)’와 구체적 행위의 적용인 ‘양심(conscientia)’의 역학 관계로 설명한다. 양지는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와 같은 자연법의 제일 원리들을 파악하는 자연적 습성(habitus)이다.(I,79,12) 이 원리들은 인간 영혼에 각인된 ‘영혼의 불꽃’과 같아서 결코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즉, 인간은 본성적으로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알 수 있는 빛을 내면에 지니고 있다.(「진리론」 17,2)
반면, 양심은 이러한 보편 원리를 구체적인 개별 사안에 적용하는 지성적 ‘행위(actus)’를 의미한다. 토마스는 양심을 ‘다른 것과 함께 알려진 지식(cum alio scientia)’ 혹은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의 적용(applicatio scientiae ad aliquid)’이라 정의한다.(I,79,13) 여기서 중요한 학술적 통찰은 양심이 ‘실천적 삼단논법’의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양지는 ‘모든 악은 피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제공하고, 이성은 ‘학교폭력은 악이다’라는 구체적 사실에 근거한 소전제를 도출하며, 양심은 ‘이 학교폭력을 피해야 한다’는 최종적인 실천적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양심이 오류를 범하는 지점은 무류한 원리인 양지가 아니라, 소전제를 설정하거나 대전제를 개별 상황에 대입하는 추론의 과정이다. 즉, 보편 원리는 확고하나 구체적 적용 과정에서 이성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양심이 보편 원리를 개별 행위에 적용하는 이성적 활동임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왜 양심이 왜곡될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양상을 분석할 수 있다.
드라마 <참교육>을 통해 본 이완된 양심과 완고한 양심
양심은 형성 과정과 환경에 따라 왜곡될 수 있으며, 이는 후대 학자들이 정립한 ‘이완된 양심(conscientia laxa)’과 ‘완고한 양심(conscientia stricta)’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왜곡은 단순한 심리적 현상을 넘어 인간의 도덕적 자유와 책임 있는 실천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된다.
심각한 교육 현실에 대해 주목하게 만든 드라마 <참교육>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이러한 왜곡된 양심의 실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드라마 속 가해자들은 동료 학생이나 교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이 받는 벌에 분노한다. 이는 도덕적 규칙을 무시하거나 마비된 상태인 이완된 양심의 전형이다. 반면,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타인의 불행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괴로워하는 이들은 완고한 양심에 갇혀 있을 수 있다.
여기서 교권보호국 사무관의 역할은 실천적 삼단논법의 오류를 바로잡는 외부적 원조로 해석된다. 그들은 피해자에게 ‘이 불행은 당신의 행동 때문이 아니다’라는 올바른 소전제를 제공함으로써, 피해자의 잘못된 추론을 교정하고 그들을 불필요한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즉, 양심의 교정은 인간을 법의 맹목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진정한 도덕적 자유로 이끄는 과정이다. 양심의 왜곡은 단순히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주체로서의 책임과 직결되기에, 우리는 올바른 양심을 형성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선악 가려내는 본성인 ‘양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양심’ 이성적 활동이지만 왜곡 쉬워
도덕 규칙 무시하는 태도 버리고 올바른 양심 따라야 진정한 자유·행복 누릴 수 있어
올바르게 살아있는 양심의 형성과 도덕적 책임
토마스에 따르면, 양심은 그것이 올바르든 그릇되든 언제나 인간을 구속한다. 만약 자신의 양심이 어떤 행위를 악이라고 판단했는데도 이를 행한다면, 비록 그 행위가 객관적으로 선일지라도 주관적으로는 악을 선택한 것이 되어 죄를 범하게 된다.(「진리론」 17,4)
그렇다면 드라마의 가해자들처럼 이완된 양심에 따라 악행을 저지르고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죄가 없는 것인가? 토마스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양심에 따랐더라도, 그 행동이 태만이나 고의에 의한 ‘극복할 수 있는 무지(ignorantia vincibilis)’(I-II,19,6)에 근거하고 있다면, 죄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즉, 인간은 자신의 양심을 올바르게 형성해야 할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있다.
반대로 완고한 양심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불가피한 무지’나 상황적 한계를 이성적으로 식별함으로써 지나친 가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잘못된 양심을 고수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양심을 교육하고 정보를 제공하여 올바른 양심으로 형성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양심,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을 향한 지성소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핵심이자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지성소이다.(사목헌장 16항) 양심은 주관적 자아가 멋대로 진리를 만들어내는 장소가 아니라, 이미 영혼 안에 존재하는 객관적 진리와 법을 증언하는 증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권고했듯,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외침은 자신의 주관적 욕망에 침잠하라는 뜻이 아니라, 내면에 이미 현존하는 보편적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생생하게 들려오는 올바른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인간은 비로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적 존재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도덕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결국 올바른 양심을 형성하고 그 판단에 충실히 따르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완성하고 지복에 이르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드라마 <참교육>이 보여주는 왜곡된 양심의 비극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왜 양심의 빛을 밝히고 그것을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닦아나가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올바른 양심이야말로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진정한 행복으로 이끄는 유일한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글 _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