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세 아버지가 계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교회에 계신 아버지, 그리고 땅에서 나를 낳으신 아버지이다. 세 분 모두 나에게 엄청난 사랑을 쏟아부어 주시고, 그 덕분에 지금 내가 이만큼이라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아빠’라고 처음 부른 존재, 나의 휴대전화에 ‘최고 멋진 울 아빠’로 저장된 내 아빠는 나에게 더욱 특별하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항상 특별하고 애잔한 존재이겠지만, 나에게 내 아빠가 더욱 최고인 데는 이유가 있다. 아빠의 어머니, 즉 나의 할머니는 동생을 낳고 돌아가셨다. 곧이어 갓난아기였던 동생마저 죽음을 맞았다. 당신 어머니의 장례식인 줄도 모르고 손님들 사이에서 놀던 5살의 아빠에게 곧 새어머니가 생겼다. 그 아래 6명의 이복동생이 태어났고, 장남이던 아빠는 단 한 번도 한국 사회의 큰아들이 받던 혜택을 누릴 새도 없이 콩쥐처럼 학대받았다.
학창 시절에는 온 식구가 먹은 아침밥 설거지를 하고 등교하느라 항상 지각 대장으로 불리었고, 대학 입학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과 학업을 병행하셨다. 80세가 넘으신 아빠는 지금도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는 경우가 있다. 몽둥이를 들고 문을 열어젖히는 새어머니의 서슬 퍼런 호통과 눈초리가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동 학대와 가정폭력에 사회가 개입해야 하는 이유는 한 아이의 소중한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함도 있지만, 폭력은 결국 눈덩이처럼 확대되면서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폭력에 시달린 아이는 그토록 싫어하던 폭력을 답습해 스스로 학대하는 부모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빠는 다행히 사랑 가득한 아내인 나의 엄마를 만났고, 부정적인 성장 기억은 반면교사가 되어 딸 셋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특히 맏딸인 나는 더욱 애틋한 기억이 많다. 집에 가면 만날 딸에게 학교로 편지를 보냈던 아빠,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뒤늦게 평화를 공부하러 멀리 떠나겠다는 딸을 흔쾌히 응원했던 단 한 사람, 먼 나라에서 인턴 근무를 하는 딸을 위해 스스로 설거지 기계가 되길 청하였고, 본인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내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기막히게 알아차리고 동생들 몰래 용돈을 보내주던 아빠의 모습, 셀 수 없이 기쁘고 가슴 찡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어떻게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땅으로 와서 우리를 구원한 기적처럼, 이 땅에 사는 ‘최고 멋진 울 아빠’를 통해 사랑의 결핍을 극복하고 확장한 기적을 본다. 그 기적의 접점은 개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결국 사랑이다. 한국전쟁 참전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조차 몰랐던 두 살 엄마는 외할머니의 사랑과 집성촌의 따스함 속에서 자랐다. 그 사랑은 아빠를 치유했고, 곧 나에게로 이어졌다. 이는 또 나의 아이와 주변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공동체에서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쩌면 나를 살리는 유일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땅에 계신 우리 아빠와 언젠가는 다 같이 만나겠지만, 최고 멋진 울 아빠가 이 땅에서 좀 더 오래 건강하게 제 곁에 머무르게 해 주세요! 제가 배우고 갚아 나갈 사랑에 닿으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거든요….”

글 _ 손서정 베아트릭스(삶을 살리는 평화 교육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