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4일 저녁,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았다는 뉴스를 접한 한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챙겼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틀 뒤인 8월 16일, 작가는 카메라를 손에 쥐고 서울 광화문 한 호텔 인근에 자리를 잡고 섰다. 매일 같이 오가던 길목, 교황이 지나갈 만한 곳이라 짐작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작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마주했다. 흰색 수단을 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불과 몇 미터 앞에서 두 차례 강복한 것이다. 작가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교황의 강복 장면을 렌즈에 담았다. 수많은 카메라가 놓친 장면을 포착한 이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종훈이다.

원불교 신자에게 새겨진 ‘교황의 미소’
“참 신기하죠? 사진의 우연성이에요. 수백 대의 카메라가 있었지만 그 방향에는 없었거든요.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저 교황님이 저를 부르셨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교황님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어요. 40년 넘게 작가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에요.”
그는 강복 장면을 가로 1m가 넘는 대형 사진으로 20장 인화해 평소 인연이 있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무료로 전했다. 귀한 사진이었기에 팔아 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돈 받고 판매할 사진은 아니었다. 그 사진은 교황청에까지 전해졌다.
원불교 신자인 그는 교황과의 인연이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9년 뒤인 2023년, 교황청에서 연락이 왔다. 교황의 몽골 사목방문에 동행해 달라는 공식 초청이었다. 종교는 달랐지만 사진이 그를 다시 교황 곁으로 이끌었다.
몽골에서 만난 교황은 2014년과 달랐다. 건강이 좋지 않아 신자들이 보이지 않을 때면 휠체어에 앉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신자들이 다가오면, 휠체어에서라도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때 교황님의 미소가 단순한 표정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교황님은 그 한 번의 미소가 어떤 사람에게는 10년, 20년, 30년을 감사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억이 된다는 걸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대가 없는 사랑을 건넨 교황의 미소는 양 작가의 마음에도 깊이 새겨졌다. 몽골에서 돌아온 그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제주 주민들과 감동을 함께 나누기 위해 2024년 4월 제주교구 광양성당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전시 제목은 ‘교황의 미소’라고 붙였다.
2014년 방한 당시부터 몽골 사목방문까지 44점의 작품이 소박한 성당의 벽면에 걸렸다. 크고 화려한 갤러리가 아닌 제주의 작은 성당으로 향한 것은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교황의 행보를 따르는 길이었다.
그리고 제주에서 시작된 전시는 올해 4월 오스트리아 비엔나까지 이어졌다. 툴립 아트 갤러리(Toolip Art Gallery)에서 열흘간 열린 전시는 그 사이 세상을 떠난 교황의 선종 1주기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갈등이 이어진 시기에 마련된 이 사진전은 현지 시민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제주에서도, 비엔나에서도 많은 사람이 교황님의 사진을 보고 행복해했어요. 제주 전시에는 신자가 아닌 분들도 큰 관심을 갖고 와 주셨죠. 모든 사람을 하나 되게 하는 교황님의 힘을 느꼈어요. 훗날 교황님을 만나게 된다면, 제게 ‘잘했다’고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종교 달라도, 교황 가르침 따라
그와 천주교의 인연은 2014년 광화문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2002년과 2003년 천주교 신자가 대다수인 독립 직후의 동티모르를 기록하며, 신앙이 삶 깊이 뿌리내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후 동티모르 사진 작업은 천주교 후원과도 이어져 현지 학교 건립 지원으로 확장됐다. 2010년에는 서울 명동 평화화랑(현 갤러리1898)에서 ‘포토옴니버스전’을 열고, 동티모르와 아프리카, DMZ 등 고통의 현장 속 희망을 선보였다.
“종교만 천주교가 아닐 뿐, 인연이 이어져 왔어요. 원불교라고 해서 교황님의 정신을 실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하루에 한 번 교황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교황님을 만나고 지켜보며 생긴 변화 같아요.”

낮은 곳을 기록하다
사실 그의 렌즈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기 전부터 낮은 곳을 향해 있었다. 현재 사단법인 제주해녀문화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양 작가에게 제주 해녀의 모습을 담는 것은 2000년부터 이어온 평생 작업이다. 그는 해녀 수가 줄고 작업 방식이 변해가는 시간을 오래 기록해 왔다.
그의 사진이 머문 곳은 늘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자리였다. 시각장애인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함께 전시를 열었으며, 에이즈 환자와 촉법소년, 6·25 참전용사, 소아암 환우들의 삶도 카메라에 담았다.
촉법소년 가족사진 프로젝트에서는 소년원에 입소한 대부분의 아이가 가족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가족사진 한 장이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관계와 기억을 다시 생각하게 할 수 있어요.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생각하며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에요.”
양 작가에 따르면, 사진을 받은 아이들의 재범률은 눈에 띄게 줄었다. 3년 반 동안 프로젝트를 이어온 결과 재범률이 11 감소했다는 설명이다. 6·25 참전용사들을 촬영할 때도 같았다. 한 어르신이 왜 사진값을 받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답했다. “어르신들은 이미 충분한 값을 치르셨습니다. 참전하신 순간, 이미 내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참전용사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가 전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책무는 분명하다. ‘취재 대상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것’이다. 사진을 찍고, 전시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기록이 다시 대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고통받는 이들을 촬영할 때는 더욱 조심스럽다. 그는 “허락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사진으로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소아암 환자를 주제로 한 작업 ‘소희야’는 사진이 실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간암을 앓던 어린이 소희가 어머니의 간을 이식받고 다시 삶을 찾아가는 투병 과정을 1000여 장의 사진으로 기록했다. 양 작가는 이 작업이 소아암 환자 지원을 위한 입법 활동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30년 넘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그는 올해 2월 정년 퇴임했다. 그의 꿈은 지금껏 그랬듯, 사진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의 모든 작업은 사진이 실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정신은 이미 제 안에 들어와 있어요. 아직 담지 못한 사진들이 많아요. 교황님이 존재 자체로 세상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저는 사진작가로서 사진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