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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55) 평화방송 케이블 TV 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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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평화방송은 3월 1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저동 본사 사옥에서 평화방송 케이블 TV 개국식을 가졌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를 맞아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선교적 요청에 따라 설립된 평화방송 케이블 TV의 개국으로 한국 천주교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영상 선교의 새장을 열었다.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은 축사를 통해 ‘전국적으로 방송하는 케이블 TV가 전국 교회를 하나로 묶는 뜻깊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곧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이 개국 선언문을 낭독하고 송출 버튼을 누름에 따라, 평화방송 케이블TV는 시그널이 행사장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역사적인 선교 TV 방송 첫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송출했다.
‘시대의 빛 가정의 벗’을 캐치프레이즈로 하는 평화방송 케이블 TV는 채널 33을 통해 미사 중계, 성극, 종교영화 등의 직접 선교 프로그램과 생명, 환경, 가정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및 토론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의 복음화와 인간화를 추구하게 된다.”(가톨릭신문 1995년 3월 12일자 1면)

영상 선교의 막 올려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영상 매체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는 케이블TV 방송국이 1995년 3월 1일 시작됐습니다. 평화 케이블TV 방송이 채널 번호 33번을 통해 가톨릭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영상 프로그램을 최초로 송출함에 따라, 평화방송·평화신문은 TV와 라디오, 신문을 모두 갖춘 가톨릭 종합 매스컴의 면모를 갖추게 됐습니다.

평화방송·평화신문의 설립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87년 11월 20일 개최된 서울대교구 사제총회 자리였습니다. 당시 서울대교구는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복음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인쇄 매체와 방송 매체를 동시에 아우르는 미디어 설립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듬해 1월 설립 추진 위원회가 구성됐고, 1988년 5월 15일 홍보 주일을 기해 주간 ‘평화신문’이 창간됐습니다. 당시까지 유일한 교회 신문이었던 가톨릭신문은 그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서울대교구가 발행하는 주간 ‘평화신문’이 지난 15일 홍보 주일을 기해 창간됐다. 매주 8면으로 발간되는 평화신문은 직접적인 교회의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으나 시사 문제를 교회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비평하는 방향으로 편집될 예정이다. 12면으로 발행된 창간호에는 광주 사태 해결 방안에 관한 김수환 추기경의 회견 내용을 비롯해, 한반도 핵 문제 및 공해 문제 등의 시사 문제가 폭넓게 다뤄졌다.”(가톨릭신문 1988년 5월 22일자 1면)

평화신문 창간 다음 해인 1989년 재단법인 평화방송 설립이 허가됨에 따라 초대 재단 이사장으로 김수환 추기경이 취임했고, 초대 사장으로는 함세웅(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임명됐습니다. 이어 1990년 4월 15일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가 공식 개국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평화방송 라디오 개국에 대해서도 크게 환영하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서울대교구 평화방송이 부활대축일인 4월 15일 오전 11시 개국, 본격적인 정규 방송에 들어간다. 국내 처음으로 보도, 사회, 교양, 음악, 오락, 종교 등 모든 것을 다루는 FM 종합 방송 매체로 개국하는 평화방송은 매일 아침 5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하루 21시간 주간 총 8820분간 방송된다.”(가톨릭신문 1990년 4월 15일자 1면)

초창기 전파 송출 시설은 남산타워에 가설됐고, 서울 중구 저동의 평화빌딩에 제작 스튜디오를 마련해 개국을 준비했습니다. 1990년 3월 6일 시험 전파를 첫 송출한 평화방송은 4월 1일부터 지상파 텔레비전을 통한 대대적인 광고를 시행하며 인지도를 높였고, 4월 15일 ‘맑은 소리, 밝은 세상’이라는 공식 캐치프레이즈 아래 FM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개국 초기 라디오 편성은 종교 18.1, 보도 12.7, 사회 교양 26.1, 음악 및 오락 43.1의 종합 편성 정책을 따랐습니다.

케이블TV 개국으로 종합 매스컴으로 발돋움

그런데 라디오 방송국 개국 직후인 1991년, 평화방송은 종교 방송의 사회적 역할과 보도 영역의 한계를 둘러싼 내홍을 겪게 됩니다. 갈등의 근원은 복음 선포와 영성 교육 중심의 순수 선교 방송을 지향했던 경영진과, 사회 정의 실현 및 비판 보도 기능을 우선시했던 제작진·기자들 간의 인식 차이에 있었습니다.

제작 거부, 파업과 농성, 공권력 투입과 대량 해고로 이어진 ‘평화방송 사태’는 국제기자연맹(IFJ)이 김수환 추기경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할 정도로 대내외적 파장이 컸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보도 비중을 대폭 낮추고 선교 및 종교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내부 갈등을 수습한 평화방송은 1993년 8월 종합유선방송 가톨릭 채널 사업자로 허가를 받으며 영상 미디어 영역으로 진출, 다매체 선교 시대를 열게 됐습니다. 동시에 지방 방송국 네트워크 건립 사업을 추진, 1996년에 광주와 대구 평화방송이 개국했고, 2000년에는 부산과 대전 평화방송이 문을 열었습니다. 2002년에는 위성방송 가톨릭 채널(SKY-평화)을 개국했고, 2009년부터는 초고속 인터넷망 기반의 IPTV(Olleh TV, B TV, U+TV) 송출을 개시해 전국 어디서나 가톨릭 영상 프로그램을 가정에서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평화방송은 2016년 11월 23일, 창립 이래 사용해 오던 영문 약칭 ‘PBC’를 ‘cpbc’로 개칭하고, 법인 및 매체 명을 ‘가톨릭평화방송’과 ‘가톨릭평화신문’으로 변경했습니다. 이는 ‘평화방송’이라는 사명이 가톨릭교회의 공식 매체임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한계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스마트 OTT 미디어 사목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은 공동체 미사의 중단이라는 전례 없는 영적 단절을 야기했습니다. 이에 가톨릭평화방송은 비대면 사목의 핵심적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대면 미사가 전면 통제된 시기에 가톨릭평화방송의 TV 미사 중계와 유튜브 성경 공부 콘텐츠는 신자들의 신앙 공동체적 유대감을 보존하는 가장 유력한 대체재로 부상했습니다.

이러한 뉴미디어 사목의 경험은 단발성 대응을 넘어 장기적인 디지털 플랫폼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졌습니다. 2023년 3월 3일, 가톨릭평화방송은 국내 최초의 가톨릭 전문 모바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인 ‘cpbc플러스’를 공식 출시했습니다. 46만 개에 이르는 방대한 가톨릭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스마트폰과 PC로 무료 제공함으로써, 현대 가톨릭 신자들의 일상에 최적화된 유비쿼터스 미디어 사목의 지평을 개척한 것입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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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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