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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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을 켜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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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 프랑스 파리의 한 가전제품 매장에 에어컨을 구입하려는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약탈 현장을 방불케 하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 프랑스는 온난한 여름 기후와 까다로운 설치 규정으로 굳이 에어컨을 설치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어서, 에어컨 보급률이 25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연일 40도를 넘는 폭염으로 학교가 문을 닫고 인명 피해가 속출하자, 에어컨 사용 문제가 일상의 선택을 넘어 국가적 정치 쟁점으로 비화했다. 이 틈을 타고, 극우세력은 에어컨을 ‘생존을 위한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기후 독재자들’이 에어컨을 쓰면 안 된다는 죄책감을 강요하며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며 선동했다. 이 주장은 상당한 호소력을 지니며 확산하는 중이다.

그동안 기후위기의 대응 방안으로 크게 두 가지의 주장이 경합해 왔다. 당장 폭염에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에어컨을 켜서 생명을 보호하는 대응이 ‘기후적응’이라면, 그 에어컨을 구동하는 에너지 시스템을 재생에너지로 바꾸고 도시 구조를 리모델링하는 방식을 ‘기후 완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응’과 ‘완화’가 이런 방식으로 구분되며 충돌할 문제는 아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이런 구분이 기후위기의 본질을 매우 흐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에어컨을 켜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는 양자택일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개인이 죄책감이나 고통을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생태계를 위험에 몰아넣는 사회의 작동 방식을 바꾸면서도 가장 먼저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지켜내는 다른 종류의 언어가 필요한 것이다.

기후위기에 물어야 할 질문은 에어컨을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왜 에어컨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도시와 사회를 만들었는가이다. 기후위기는 개인들이 무분별하게 전기를 소비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끝없는 생산과 소비를 성장의 기준으로 삼아 온 경제체제,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정책, 그리고 막대한 이윤을 위해 탄소배출의 비용을 사회 전체에 떠넘겨 온 산업 시스템이 위기의 근원이다. 요즈음은 기업도 탄소배출 축소와 재생에너지 같은 ‘탄소중립’ 정책의 실현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자신들도 자본에 피해를 줄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녹색 성장’이니 ‘지속가능한 발전’이니 하는 이념들이다.

생태환경을 염려하며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일은 분명 가치 있는 실천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문제의 뿌리를 건드릴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친환경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정치와 기업에게 책임을 묻고 대안을 요구해야 하는 더 근본적인 행동을 방해한다. 우리의 안도감이 오히려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기업은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소비자의 양심을 만족시키면서도, 실제로는 대량 생산과 과잉 소비를 부추기는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 결국 우리의 선의는 사회를 바꾸는 출발점이 되어야지, 구조적 문제를 덮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통합생태론’을 통해 생태적 회심과 사회 구조의 변화가 함께 가는 근본적인 해법을 제안했다. 과도한 편리함과 끝없는 소비주의에 길든 우리가 ‘생태적 불편함’을 기꺼이 수용하는 일은 단순한 인내나 희생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이 선전하는 가짜 행복의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주권을 스스로 되찾는 영성적 독립 선언과도 같다. 파국으로 질주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삶의 격조를 지켜내고 ‘참된 행복’을 스스로 재정립하는 가장 아름다운 저항이다. 사소한 일상의 실천이 쌓여 형성된 생태 감수성은 구조를 변혁하는 ‘기후정치’의 단단한 심정적 토대가 된다.

기후위기, 노동의 위기, 생명의 위기를 넘어서려면 ‘또 다른 성장’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가장 먼저 견뎌야 하는 이들은 언제나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가 하는 생태적 선택이 기후재난에 시달리는 취약계층의 고통을 줄이고 지구 공동체의 생명에 기여하고 있다는 연대의 감각은, 자본이 주는 물질적 풍요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실존적 밀도를 부여한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안으로부터 가꾸어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글 _ 박상훈 알렉산데르 신부(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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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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