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경북 영덕과 부산 기장을 신규 핵발전소와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 후보 부지로 선정했다. 그러나 이 결정이 주민들의 충분한 공론과 동의를 거쳐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 공동체의 삶과 미래 세대의 안전이 걸린 사안임에도, 논의는 여전히 중앙의 필요와 산업 논리에 기울어 있다.
정부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의 전력 수요 증가를 핵발전 확대의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새 핵발전소가 실제로 가동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장의 전력 수요 증가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은 시간표부터 맞지 않는다.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은 수도권인데, 위험과 부담은 다시 지역이 떠안게 된다는 점은 또다른 갈등을 낳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핵폐기물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수만 년 동안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폐기물을 어디에, 어떻게, 누구의 책임으로 맡길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과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SMR까지 서두르는 것은 미래 세대에 부담을 넘기는 일이다.
교회가 핵발전소 건설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방사성 폐기물을 포함한 폐기물 문제를 지적하고, 공동선은 미래 세대에게까지 확장되며 세대 간 연대는 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창조 세계를 돌보라는 교회의 요청은 에너지 정책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전이 아니다. 생명과 공동선,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우선한 신중한 에너지 정책이다. 정부는 부지 선정을 재고하고, 숙의와 참여를 바탕으로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다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