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리는 경남 합천. 이곳에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 피폭됐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온 한국인들이 삶을 이어 온 공간이 있다. 정부 지원으로 1996년 문을 연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다. 6월 29일부터 7월 2일까지 ‘정의로운 평화, 기억에서 배운다 - 핵 없는 세상을 향한 살아 있는 증거들의 호소’를 주제로 열린 한일탈핵평화순례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핵 없는 세상을 향한 연대를 다짐했다.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
6월 30일, 백학산 자락 아래 자리한 경남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한일탈핵평화순례단 42명이 도착했다. 순례단에는 일본 주교회의 생명평화인권위원장 모리야마 신조 주교(오이타교구장)를 비롯한 일본 참가자 17명이 함께했다. 원폭 피해자 1세인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과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은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순례단은 원폭 피해로 숨진 한국인 1172명의 위패가 모셔진 위령각에서 묵념한 뒤 복지회관과 합천원폭자료관을 둘러보며 원폭 피해자들의 증언에 귀를 기울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여름방학이 끝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순간 유리창이 박살 나고 옆집도 사라졌습니다. 어린 동생들이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동생들을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에 뛰쳐나갔습니다.”
81년이 지난 지금도 원폭 피해자 1세 이정우(94) 할머니는 1945년 8월 6일 그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1945년 태평양전쟁 말기, 미국은 일본의 항복을 압박하며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 원폭으로 23만여 명이 숨졌고, 강제동원 등으로 두 도시에 머물던 조선인 7만여 명도 피폭됐다. 이 가운데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생존자 중 2만3000여 명은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와 각지에 흩어져 살았다.
합천은 그 피해가 유독 깊게 새겨진 지역이다. 산지가 많아 경작지가 부족했던 합천에서는 일제강점기 먹고살 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이 적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일하거나 강제 동원됐다가 원폭 피해를 입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70가 합천 출신으로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이유다.

끝나지 않은 고통
원폭 피해자 1세들은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제대로 된 보상과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과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원폭의 피해가 1세에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자녀와 손주 세대도 피폭과의 관련성이 의심되는 유전적 질환과 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 2·3세는 아직 법적으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 1·2세 증언 및 교류회에서 한정순 한국원폭피해2세환우회 회장은 “2·3세도 원폭 피해자로 인정받고 국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가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한 회장 역시 피폭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는 “대퇴부괴사증으로 두 다리로 제대로 걷지 못하고 큰 수술만 12차례 받았다”며 “43세인 아들도 뇌성마비를 안고 태어나 현재 혼자 앉지도 걷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폭 후유증의 대물림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2·3세는 원폭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치료비나 수술비 등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가족에게 짐을 지운 채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이 2·3세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행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지원 대상을 피폭 당사자와 당시 임신 중이었던 태아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 2·3세 실태 조사와 의료 지원, 피해자와 자녀에 대한 생활·복지 지원을 확대하는 개정안들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일본 원폭 당시 조선인 피해자 귀국 후에도 보상·지원 못 받고 원폭 후유증과 가난에 시달려
日 순례단, 정부 책임 언급하며 비핵·평화 필요성에 공감 영남 지역 핵발전소 찾아 연대 다짐
함께 짊어진 책임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이날 순례단의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말이었다.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그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를 말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모리야마 주교는 이 말 앞에서 일본의 책임을 먼저 언급했다. 그는 “미국이 원폭을 투하했지만,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일본도 가해자라고 생각한다”며 “원폭 피해자 2·3세의 고통을 기억하고, 일본에서도 이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이어 원폭 피해 2세 환우 쉼터인 평화의 집을 찾았다. 일본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비핵과 평화의 메시지를 남겼다. ‘원전 없이 살고 싶은 미야즈의 모임’ 요시다 마리코 대표(교토교구 미야즈본당)는 “한국에도 원폭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과 이들의 활동을 알게 됐다”며 “전쟁의 책임을 외면하는 현실 속에서도 핵이 사라지는 그날을 기다리며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한정순 한국원폭피해2세환우회 회장에게 전달했다. 이들은 “합천 출신 사람들이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일본 역시 이 고통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며 “한국의 수많은 원폭 피해 2·3세들이 아프면 아프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핵 없는 평화를 향해
순례단은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자신이 피폭 후유증을 앓는 원폭 피해자 2세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반핵평화운동가 고(故) 김형률 씨의 유해가 모셔진 봉안담도 찾아 묵념했다.
김 씨는 생전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설립하고 원폭 피해 2세 문제를 사회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그는 2005년 35세의 나이로 피폭 후유증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 일본 순례단은 이곳에 원폭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핵 없는 평화를 염원하는 종이학 수백 개를 바쳤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아빠스(블라시오)는 “원폭 피폭이 세대를 거듭하며 전쟁의 잔ㄴ상을 남기고, 피해자들에게 병을 유발하고 있는 현실을 더 깊이 인식해야 한다”며 “가까운 이웃임에도 이제야 알게 되고 찾아뵙게 돼 죄송한 마음이고, 교회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순례단은 합천 방문 다음날인 7월 1일에는 부산 기장 고리, 울산 울주 새울, 경주 월성 핵발전소를 차례로 찾아 탈핵단체들과 연대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일탈핵평화순례는 7월 2일 마츠우라 고로 주교(나고야교구장)와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위원의 ‘핵과 평화’ 주제 간담회를 끝으로 나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