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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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1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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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 55,10-11 / 제2독서 로마 8,18-23 / 복음 마태 13,1-23

어느 건축가가 지인의 배려로 박물관 수장고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 수장고에는 아직 박물관에 전시되지 않은 많은 작품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둘러보다가 낯설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필체의 글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명필이라 할 수밖에 없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전시되지 않고 이 수장고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친일파이자 매국노라 불리는 이완용이 쓴 글이라 전시 불가라고 합니다.

이완용은 실제로 당대 최고의 명필 중 한 명으로 꼽혔습니다. 특히 물 흐르듯 쓰는 행서(行書)와 초서(草書)에 매우 능했습니다. 이렇게 글을 잘 쓰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그 노력으로 충분히 후세에 이름을 날릴 수도 있었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그 죄가 너무 커서 모든 노력 자체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위대한 일을 많이 남겼어도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죄인의 삶을 살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면 어떨까요? 세상 안에서 남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관한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사실 땅을 먼저 갈고 씨를 뿌리는 우리의 농사 방법과 달리, 이스라엘 지역의 농사는 씨를 먼저 흩뿌린 뒤에 땅을 갈아엎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복음에 나오듯이 길가나 돌밭, 가시덤불에까지 씨앗이 날아가도록 놔두는 농부는 없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낭비이고, 따라서 실패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온 세상에 말씀의 씨앗을 던지시는 하느님의 무한하고 관대한 사랑을 상징합니다.

먼저 길가는 수많은 발길에 짓밟혀 단단하게 굳어버린 길입니다. 타성에 젖은 신앙이나 세상의 논리로 굳어버려 말씀이 한치도 스며들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돌밭은 겉으로는 흙이 있어 보이나, 그 밑에는 단단한 돌이 있습니다. 감정적인 동요나 위로를 구할 때는 기쁘게 말씀을 받지만, 신앙 때문에 감수해야 할 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뿌리가 없어 이내 말라 버립니다.

가시덤불은 흙도 깊고 뿌리도 내렸지만, 주변의 가시덤불이 햇빛과 양분을 가로챕니다. 세상의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더 커서 영적 질식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마지막은 좋은 땅입니다. 말씀을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을 넘어 자기 삶의 실존적 결단으로 깨닫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느님은 수확량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비옥한 땅만 골라서 씨를 뿌리지 않으십니다. 굳어버린 길가 같은 내 마음, 얕은 돌밭 같은 내 결심, 걱정과 욕심으로 가득 찬 가시덤불 같은 내 영혼에도 끊임없이, 때로는 바보 같을 정도로 말씀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혹시 자기조차 포기한 내 마음은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정작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에 나오는 네 가지 땅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을 네 부류로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 안에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의 모습이 모두 있습니다. 어제는 돌밭이었어도 오늘 쟁기질을 열심히 하고 돌을 골라내면 충분히 좋은 땅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이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매우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마태 13,8)

당시 이스라엘 지역에서 농사를 지을 때, 뿌린 씨의 4~5배 정도 거두면 평년작이고, 7~10배 정도 거두면 대풍년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백 배, 예순 배의 수치는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의 초자연적인 기적과 풍요로움을 뜻하는 것입니다.

씨앗의 4분의 3이 길가,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져 허비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좋은 땅에 떨어진 4분의 1의 씨앗이 모든 실패와 낭비를 덮고도 남을 승리를 거둔다는 희망을 선포하십니다. 복음 전파의 길이 험난하고 세상의 유혹이 가득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마침내 풍성한 열매를 맺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좋은 땅이 될 수 있도록 잘 가꾸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요?

글 _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성 김대건본당 주임, 인천가톨릭대학교 카펠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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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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