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한 본당에서 사목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부모님을 따라 평일 미사에 나온 아이들은 미사 후 부모님이 여러 단체 모임에 들어가고 나면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성당의 작은 마당에서 휴대폰을 보거나, 친구랑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사제관에 데려와 간식도 주고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본당 내에 교회의 미래라고 부르는 청소년들을 위한 장소가 없다는 사실이 애석했습니다. 그 청소년들이 교회의 미래가 아닌 현재라고 느낀다면 더더욱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교리실 한 개를 아이들을 위한 쉼터로 만들어주기로 다짐하고, 아이들이 잠시나마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물품들을 마련하여 쉼터를 정성껏 꾸몄습니다.
안타깝게도 쉼터를 완성할 무렵,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아이들이 그 쉼터를 이용하는 모습을 정작 보지 못하고 다른 본당으로 떠났지만, 그 후에도 성당에는 청소년들이 머물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계속 마음에 새겨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청소년들을 너무 자주 ‘준비 중인 신자’로 바라보곤 합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직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더 배워야 하기 때문에 언젠가 교회의 주역이 될 사람들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례받은 순간부터 그들도 이미 교회의 구성원입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교회 안에서의 존엄과 소명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당신 곁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막아섰을 때도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마태 19,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미래의 제자로만 바라보지 않으시고, 현재 당신과 함께하는 하느님 나라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청소년사목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년들이 교회 안에서 자신이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어른을 만났을 때, 본당의 중요한 자리에 초대받았을 때,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았을 때, 그리고 자신도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을 때입니다.
제가 만난 많은 청소년은 생각보다 깊은 신앙의 고민을 하고 있었고, 생각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생각보다 큰 열정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게 해 주기도 했고, 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습니다.
청소년들은 교회의 미래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오늘의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봉사하고, 고민하고, 성장하며 살아가는 현재의 교회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청소년들에게 “언젠가 네가 교회의 주인공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너는 이미 우리 공동체의 소중한 구성원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청소년들은 비로소 교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순간, 우리는 청소년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을 통해 교회가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글 _ 이규성 요셉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