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전을 읽다 보면 종종 사실인지 의심스러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 성인이 실제 인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성 소피아(Sophia)는 하느님의 지혜를 뜻하고, 함께 순교했다는 세 딸, 성 피데스(Fides), 성 스페스(Spes), 성 카리타스(Caritas)는 각각 신덕(믿음), 망덕(희망), 애덕(사랑)을 뜻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하느님을 향한 세 가지 덕, 그리고 그 원천인 지혜를 공경하던 마음에서 나온 전설이라고 추측합니다.
성 소피아만이 아닙니다.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예수님을 어깨에 업고 강을 건넜다는 성 크리스토포로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업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성 베로니카(Veronica)의 이름도 라틴어로 ‘참된 형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성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피와 땀을 닦은 수건에 ‘참된 형상’,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전해집니다.
이 밖에도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용을 물리쳤다’는 성 제오르지오나 성 마르가리타가 그렇고, 석가모니를 연상하게 하는 성 요사팟의 이야기처럼 다른 설화를 차용한 듯한 성인전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불확실한 전승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은 독서에 관해 “성인들의 수난 기록이나 전기는 역사적 진실성에 부합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92항)
이에 따라 1969년 개정된 전례력 축일표에는 역사성이 불확실한 성인들의 기념일이 제외됐습니다. 또한 시복시성 절차에서도 “하느님의 종의 생애에 대한 정확한 정보 탐구”(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황령 「완덕의 천상 스승」 제2조 1항)를 중시하면서 생애·덕행·순교·명성 등을 증거와 문서로 입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확실한 인물과 행적이 아니면 성인이 될 수 없는 것이죠.
그렇다고 이런 성인들을 공경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성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분들이 ‘허구’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전승 과정에서 실존 인물의 이야기가 각색되거나 덧붙여지거나 과장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성인 공경, 성인에게 청하는 전구는 모두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향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은 “성인들과 이루는 통공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준다”면서 “성인들의 통공도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고 우리가 성인들에게 보인 사랑의 증거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지향한다”고 설명합니다.(50항 참조) 만일 성인의 전구를 단정하기 어렵더라도, 그 공경과 기도의 지향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성이 불확실한 성인의 이야기를 모두 사실로 고집하는 것도 바른 자세가 아니지만, 그 이야기들을 부정하기만 하는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성인들의 이야기 안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전승을 통해 교회가 바라본 복음적 덕과 예수님께 이르는 길이 아닐까요?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