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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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16주일, 농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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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13장은 일곱 가지 비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인 ‘하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일곱’이라는 완전수에 담아내고 있지요. 씨 뿌리는 사람, 가라지, 겨자씨, 누룩, 보물, 진주 상인, 그물과 같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비유로 제시함으로써,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겁니다.

그중 오늘 복음은 가라지의 비유(마태 13,24-30)입니다.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린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는 동안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는 내용이지요. 가라지와 하늘 나라는 어떤 의미와 연관성이 있는 걸까요?

‘가라지’로 번역하는 그리스어 ‘지자니온(ζιζάνιον)’은 생육 기간에는 밀과 생김이 흡사해 분간하기 매우 어려운 식물입니다. 또한 밀과 같은 계절에 열매가 익기 때문에, 추수 때 곡식이 섞이기는 더욱 쉽지요. 하지만 맛은 쓰기 때문에, 밀에 섞였을 경우 밀가루의 맛을 훼손한다고 하여 ‘독보리’라고도 불립니다.(김영숙, 「성경에 나오는 식물들」 참조)

복음에 의하면, 밀의 품질을 떨어뜨릴 가라지가 자라고 있으니, 종들은 그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그대로 두게 하지요. 종들이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마태 13,29) 모를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만약 집주인이 질 좋은 밀을 얻으려고 했다면, 가라지는 그냥 뽑아 거두어 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집주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복음은 그 점이 ‘하늘 나라’에 비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밀과 가라지. 복음서는 왜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13,30)라고 말씀하는 걸까요?

이 비유는 세상에 선과 악이 왜 항상 공존해야 하는지 묻게 합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는 걸까요? 거룩한 성교회 안에는 왜 여전히 위선과 죄인이 존재할까요? 왜 하느님께서는 그 죄악을 없애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실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만약 하느님께서 죄악을 없애 버리기로 작정하셨다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밀 또는 가라지‘만’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밀과 가라지가 모두 ‘함께’ 자라도록 하신 것은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밀이 긍정성이라면 가라지는 부정성입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부정성을 제거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긍정적인 것만 보고 싶은 것이지요. 철학자 한병철은 「신에 관하여」에서, “우리는 모든 형태의 부정성을 제거하려 드는 긍정성의 사회에서 산다”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부정적인 것을 제거하는 것은 세상을 마치 무균실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부정성을 제거한 나머지 세상을 온통 매끄럽게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보기 싫은 것은 아예 없애거나 안 보려고 하는 이러한 태도는 세상을 긍정성으로만 획일화시킵니다. 

이를테면, 디지털화된 현대 사회는 타인의 저항을 줄이고 부정성이나 아픔을 일으킬 만한 맞수를 점점 더 사라지게 만들며, 끊임없는 ‘좋아요’로 우리의 영혼과 정신을 마비시키는 거지요. 하지만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오히려 깨져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 ‘깨짐’은 아픔이라는 부정성에 의해 발생하고요.

오늘 복음이 전해주는 가라지의 비유는 부정성이 오히려 우리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성찰하게 합니다. 즉, 우리가 우리 내면의 가라지를 발견했을 때, 비록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것 때문에 시련을 겪을지라도, 오히려 그것으로 말미암아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하느님이 왜 가라지를 밀과 함께 자라도록 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밀과 가라지를 모아들일지, 거두어서 태워 버릴지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확 때, 곧 마지막 심판 때에 하느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나의 가라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우리를 당장 거두시지 않는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 투성이인 나와 너, 우리지만, 모두 ‘함께’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것이 하늘 나라의 신비입니다.

글 _ 김정일 안드레아 신부(의정부교구·서울대교구 대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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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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