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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복음] 광복과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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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더운 여름날 정오. 라디오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짐은 우리 정부에 공동선언 조항을 수락하기로 했다는 뜻을 미국, 영국, 중국, 소련 정부에 통고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약 3분간 이어진 방송은 일본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마음에서 전쟁했지만, 4년이 넘는 전쟁 동안 열심히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잔인한 폭탄을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무고한 일본인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에 마음이 아파 어쩔 수 없이 공동선언 조항을 수락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이제 장래를 건설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제국의 영광을 드높이고 진보하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을 당부합니다.

네, 맞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이 했던 연설입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인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라디오가 있던 집도 거의 없었지만, 일본어 중에서도 어려운 일본어라 그냥 사람들은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서대문형무소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풀려나며 사람들은 조금씩 분위기를 감지했고, 여운형 선생님이 휘문중학교에서 연설하시며 그때야 광복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국민은 광복하게 된다면 모두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광복과 동시에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분단이었습니다. 강대국들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회담을 이어 갔습니다. 특히 1945년 2월 4일부터 열린 얄타회담에서는 소련을 대일 전쟁에 참전시키는 문제가 논의됐습니다. 당시 소련은 일본이 독일처럼 빠르게 회복해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에 따라 소련은 한반도에 미국과 소련이 함께 주둔하는 방안을 요구했고, 이 요구는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결과 일본의 패망과 동시에 한반도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주둔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한반도는 사실상 분단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게 그어진 38선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휴전선으로 바뀌었고, 지금까지 81년째 넘지 못하는 선이 되었습니다.

7월 14일 제3회 북향민들의 날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1997년 7월 14일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날을 기념해 대한민국 정부는 2024년부터 북향민을 포용하고, 권익을 향상하며, 남북 주민 간 통합 문화를 형성해 통일 인식을 높이는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행사에서 만난 많은 북향민의 소망은 모두 같았습니다. 고향 땅에 가보는 것, 거기서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그들의 소망입니다.

물론 광복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기쁨이 어떤 이들에게는 분단의 아픔으로 다가오는 날이기도 할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약 3만5000명의 북향민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하루빨리 고향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매일 밤 9시에 알람을 맞추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8월 15일이 기쁨과 슬픔을 같이 지니는 날이 아닌, 기쁨만 가득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 _ 허현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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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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