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씁쓸한 농담이 있습니다. “신천지가 천주교 신자 포교는 잘 안 한다더라. 천주교 신자들은 천 원만 내니까.”
웃자고 하는 말 같지만, 결코 가벼운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뼈아픈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도 “성당에서 봉사하다 보면 헌금 봉투에 천 원짜리 한 장만 덜렁 들어있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는 말이 신자 공동체 어디서나 공공연하게 나오곤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민낯입니다.
요즘 천 원짜리 지폐는 일상에서 거의 사라진 돈입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려 해도 1000원으로는 부족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봉헌 바구니에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결론은 하나뿐입니다. 미사를 위해 ‘일부러’ 준비해 온 것입니다. 1000원을… 하느님께 드리기 위해, 수고스럽게 챙겨 온 셈입니다.
처음 제대 앞으로 나아가 봉헌 바구니에 손을 넣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제가 첫영성체를 하던 시절, 주일 봉헌금은 100원, 200원이었습니다. 학교 담벼락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100원이면 떡을 열 개 집어 먹던 시절, 그 귀한 돈을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용돈을 아껴 1000원을 냈습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값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봉헌했던 1000원은 지금 가치로 1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신앙의 나이는 차곡차곡 쌓였는데, 하느님을 향한 봉헌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셈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계획하고 저축합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적금을 붓고, 결혼, 여행, 자녀 학비, 건강검진 등을 위해 돈을 모읍니다.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기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아껴서 기어이 손에 넣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위해서는 어떻습니까. 일주일에 1만 원, 하루에 1000원, 2000원.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 그 작은 돈조차 따로 모아본 적이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위해서는 내 소득의 가장 큰 부분을 할애하면서도 주님을 위한 몫은 남고 남은 자투리 돈으로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미사 끝나고 지인들과 마시는 커피 값 7~8000원, 배달 앱을 열어 음식을 시킬 때는 기본 3~4만 원을 주저 없이 씁니다. 명절에 만난 자녀들의 용돈과 손주 생일 앞에서는 기꺼이 지갑을 활짝 엽니다. 그런데 유독 봉헌만큼은, 30~40년 전 그 포장마차 앞을 서성이던 어린 시절보다 못한 자리에 멈춰 서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하느님께 드리는 일에,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는 ‘가장 나중에, 가장 적게’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한 달 동안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순간들 가운데 과연 하느님을 위한 자리는 몇 번이나 있었습니까?
성당에서의 봉헌은 단순히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운영비나 세금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마음의 지향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내가 삶에서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하느님 앞에 고스란히 꺼내 보이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만약 하느님을 향한 그 사랑의 표현이 30~40년째 같은 자리에 있다면, 오늘부터 아주 작은 것부터 조금 다르게 표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글 _ 현진희 아타나시아(의정부교구 고양 가좌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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