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말씀들은 ‘참으로 값진 것을 알아보는 눈은 어디서 오는가’를 제시합니다. 곧 하느님 나라의 참된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을 위해 자기의 전부를 내어놓는 지혜를 제안합니다. 주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1열왕 3,5) 하고 물으십니다. 솔로몬은 선과 악을 분별하여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듣는 마음’을 청합니다. 이는 단순한 지적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을 하느님의 뜻대로 이끌 수 있는, 듣는 능력입니다.(1열왕 3,5.7-12 참조)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고 선언합니다. 이 ‘선’은 아드님과 같은 모습을 닮아가는 것(로마 8,29 참조)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알아봐야 할 참된 가치의 기준은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솔로몬이 청한 ‘듣는 마음’과 바오로가 말하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는 결국 하나로 만납니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내맡기는 지혜를 가리킵니다.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사람과 가라지 비유의 결론입니다.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과 값진 진주 하나를 찾아낸 상인의 공통점은 ‘가진 것을 다 팔아’(마태 13,44) 그것을 산다는 데 있습니다. 여러 교부의 해석에 따르면, 밭에 묻힌 보물은 밭으로 비유되는 성경 안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신비’이며, 그것을 캐내는 일은 곧 말씀을 깊이 파고드는 ‘영적 독서의 수고’를 가리킵니다.
한편 눈여겨볼 부분은 보물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과 달리 이미 ‘좋은 진주를 찾고 있던 상인’입니다. 즉 하느님 나라는 어떤 이에게는 뜻밖의 은총으로, 어떤 이에게는 오랜 추구 끝의 응답으로 주어지지만, 그것을 알아본 뒤의 반응은 동일합니다.
그 반응은 기쁘게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 보물을 다시 숨겨두고 ‘기뻐하며’(마태 13,44) 돌아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것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는 세상의 손익 계산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어지는 그물 비유(마태 13,47-50 참조) 역시 성장 시기의 교회 안에 선한 이와 악한 이가 함께 있음을, 그리고 최종 판별은 종말에 이뤄짐을 말합니다. 그물이 지금 당장 물고기를 가려내지 않듯, 교회 역시 지금은 심판자가 아니라 그물의 역할, 곧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태 13,52)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옛 계약의 지혜와 새 계약의 은총을 함께 간직하고 나눠 줄 수 있는 사람 곧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의 새로움에 눈뜬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들을 관통하는 하나는 ‘보물을 알아보는 마음’입니다. 문제는 보물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이 흐려진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맑게 하는 그리스도교 수련 고전이 「필로칼리아」인데, 여기에서 교부들은 정념을 정화하고, ‘예수 기도’로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게 함으로써, 점차 일상의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된다고 증언합니다.
참된 가치를 알아보는 눈은 은총으로 주어지고, 그 눈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무언가를 내어놓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우리 곁에 있는 하느님 나라의 값어치를 알아보는 ‘듣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이웃 사랑,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사실 밭을 사고 진주를 사는 행위입니다. 문제는 그 밭 속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는 데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나는 지금 내 삶의 밭을 갈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밭에 묻힌 보물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 나에게 하느님 나라는 우연히 만난 보물인가, 오래 찾던 진주인가.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의 눈’을 주신 주님께 그 마음을 청합시다. 세상의 값어치와 하느님 나라의 값어치를 혼동하지 않고, 참된 보물(그리스도와 복음 선포)을 알아보았을 때는 손해라 여기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용기도 주님께 청해 봅시다.

글 _ 곽승룡 비오 신부(대전교구 태안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