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전하는 살아 있는 말씀’으로 읽고 연구해 온 성서학자 메리 힐리 박사. 미국 세이크리드하트대신학교 성경학 교수이자 교회 학위 과정 신학대학원장인 그는 「가톨릭 성경 주석(the Catholic Commentary on Sacred Scripture)」 시리즈 책임 편집자이자 「마르코 복음서」, 「히브리서」, 「창세기」 주석 저자로,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경신성사부 위원, 국제 가톨릭 성령쇄신봉사회 신앙교리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성경과 전례, 성령의 은사를 통해 교회가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지를 전해 왔다.
사적 서원(私的誓願, votum privatum)으로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고 평신도로 살아가는 그는, 최근 3년 동안 위탁 양육해 온 카일을 입양하며 말씀과 사랑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응답이 되는지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가톨릭신문 창간 100주년 기획 ‘세계교회 지성에게 묻다’를 통해 힐리 박사는 성경과 치유, 여성과 평신도의 역할, 그리스도인의 화합과 일치,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와 가톨릭 미디어의 사명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Q. 성서학 연구 성과를 신자들의 성경 읽기와 신앙생활에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많은 가톨릭 신자는 성경을 읽으면서, 그 말씀이 하느님께서 지금 자신에게 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성경은 오늘날과는 먼 시대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쓰였기 때문에, 본문을 본래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그것이 오늘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필요합니다.
현대 성서학의 뛰어난 성과를 바탕으로 하되 일반 독자도 이해하기 쉽게 제시하는 것, 그래서 신자들이 성경을 사랑하고 말씀을 일상에 적용하며 그 안에 담긴 생명을 주는 힘을 체험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저와 동료들이 「가톨릭 성경 주석」 시리즈를 펴낸 목적이었어요.
본당과 교구 차원에서도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나누는 문화를 길러야 합니다.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기쁨에 눈뜨는 일이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읽기 쉬운 성경 번역본과 주석, 영상 강좌,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읽는 방법을 안내하는 자료 등이 필요할 거예요. 이상적으로는 모든 본당에 소공동체 성경 공부 모임이 마련돼, 신자들이 끊임없이 말씀을 만나며 영적 자양분과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카푸친 작은형제회 신학자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추기경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우리가 신자로서 사목과 선교에서 진정 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계획을 세운 뒤 그것을 장식할 만한 성경 구절을 찾는 게 아니라, 성경에서 시작해 그 안에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요.
Q. 저서 「치유: 하느님 자비의 선물을 세상에 전하다(Healing: Bringing the Gift of God’s Mercy to the World, 국내 미출판)」에서 치유를 단순한 기적 체험이 아니라 하느님 자비와 복음 선포의 문제로 제시하셨는데요.
치유는 예수님께서 지상에 머무시며 행하시던 복음 선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모든 시대에 걸친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놀라울 만큼 많은 치유와 기적을 행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루르드 같은 성지에서, 때로는 성인들의 전구와 유해를 통해, 또 가장 일상적으로는 평범한 신자들의 믿음과 기도를 통해서 말이죠.
치유는 가시적으로 구현된 복음이에요.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살아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죄와 그 모든 결과를 이기셨고, 우리에게 생명의 충만함을 주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 주니까요. 복음 속 예수님은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치유를 청하라고 가르치시죠. 즉각적 치유가 언제나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저는 주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우리를 치유하기를 갈망하신다고 확신합니다. 치유를 위한 모든 기도는 고통받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연민을 체험할 기회입니다.
그리스도인 일치·화합 위해서도 노력
2027 서울 WYD, 복음 선포 새 기회
시대 징표 해석하는 가톨릭 미디어 중요

Q. 2014년 교황청 성서위원회 첫 여성 위원에 이어, 2025년 1월에는 경신성사부 위원으로 임명됐습니다. 성경 연구와 전례라는 중요한 영역에서, 여성이자 평신도로서 교회에 어떤 고유한 관점과 역할을 더할 수 있을까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성과 남성은 각각 고유한 은사와 특유의 천재성을 품고 있어요. 여성들은 사물을 더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고, 인간 개개인의 독보적인 가치에 주목하며, 언제나 사랑이 가장 우선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둡니다.
제가 「창세기」 주석을 쓸 때도 남성 학자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간 이야기 속 요소들, 이를테면 등장인물의 영적 성장이나 소외된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자애로운 모습에 주의가 끌리곤 했어요. 교회가 여성들에게 신학과 성서학에서 더 높은 학위를 받을 기회를 많이 제공해, 신자들을 가르치고 양성하는 역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현재 경신성사부의 주요 과제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교서 「나는 간절히 바랐다」에서 요청하신 대로, 모든 신자가 전례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그 거행에 더욱 온전히 참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나아가 신자들이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힘으로 삶이 변화되는 것을 체험하도록 필요한 지침과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죠. 제 역할도 이러한 노력에 힘을 보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in persona Christi)’ 전례를 거행하는 직무 사제가 아니라,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평신도의 입장과 시각에서 전례를 바라봅니다. 저를 비롯한 경신성사부의 평신도 위원들은 전례에 관한 논의가 신자들의 실제 삶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도울 수 있어요. 신자들이 본당 주일미사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전례에서 받은 은총을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 가는지에 주목하는 것이죠. 경신성사부가 이처럼 상호 보완적인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진전입니다.
Q. 일부 신학교에서는 여성이 강의나 연구를 맡고 있지만, 사제 양성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성의 은사는 사제 양성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여성들이 양성 과정에 참여하면, 직관과 세심한 시선으로 신학생의 인간적·영적 성숙에 깊이 있는 통찰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남성 양성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정서적·관계적 어려움의 징후를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도 있죠. 사제는 정통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거행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존중과 사랑, 연민을 품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이기에, 이러한 문제들을 양성 과정에서 짚고 넘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직자를, 비판을 초월한 존재, 인간적인 약점조차 없는 존재로 여기는 사고방식도 내려놓아야 해요.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정체성에 뿌리를 내리고, 여성과 남성 모두와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정체성이 없다면 삶의 온갖 압박 속에서 중독이나 미디어 과의존에 빠지거나, 타인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등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어려움에 대응할 위험이 있어요. 이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학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죠.

Q.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 주관 ‘국제 오순절-가톨릭 대화’에 2013년부터 12년간 가톨릭 대표 위원으로 참여해 오셨습니다. 서로 다른 전통이 지닌 은사를 식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복음화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다른 교파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성령과 그 은사에 열린 오순절 교인들의 태도, 성경을 깊이 사랑하는 침례교인들의 자세,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증언하려는 복음주의 교인들의 열정이 그 예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쓰셨듯, 에큐메니즘은 ‘단지 다른 이들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얻는 것만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 안에 심어 놓으신 것을 거두어들이는 일이며, 이는 우리를 위한 선물이기도’(246항) 하니까요.
2033년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2000주년을 기념합니다. 그리스도인끼리도 화합하지 못한다면, 비신자들에게 우리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절이라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어요.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려면, 우선 서로 더 가까워지고 협력할 길을 찾는 일이 필요합니다.
Q. 2027 서울 WYD를 준비하는 한국교회와 청년들, 그리고 창간 100주년을 앞둔 가톨릭신문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서울 WYD는 한국교회에 특별한 은총의 순간이 될 거예요. 한국 청년들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세계교회라는 신앙 공동체에 속한 기쁨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이가 예수님을 세상 그 어느 보배보다도 “값진 진주”(마태 13,46)로 깨닫고,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는 여정에 기쁘게 나서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도 서울 WYD를 교회 안팎의 모든 이에게 복음을 새롭게 선포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해요. 청년들은 에너지와 창의성, 열정만으로도 훌륭한 복음 선포자가 될 수 있죠. 청년들이 직접 대회를 준비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더 많은 이가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가톨릭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선하고 참되며 아름다운 것으로 향하게 하고, 신앙의 빛으로 시대의 징표를 해석하도록 돕는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한국교회의 순교자들이 세계 모든 신자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가톨릭신문의 모든 구성원과 한국교회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빛을 따라갈 용기를 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성령 안에서 살아 있게 하시어, 한국과 그 너머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도록 보살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