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을 비롯한 종교단체 대표와 106개 시민, 소비자, 종교, 농민 단체 등이 참여하는 외채 상환 금 모으기 범국민운동이 1월 12일 본격 가동됐다. 김수환 추기경과 송월주 스님, 서영훈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한국소비자연맹 정광모 회장 등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명동 YWCA 강당에서 외채 상환 금 모으기 범국민운동 발대식을 갖고 장롱 속에서 사장되고 있는 금을 모아 국가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는 운동에 돌입했다.”(가톨릭신문 1998년 1월 18일자 1면)

외환위기로 인한 사회의 붕괴
1997년 하반기 대한민국을 강타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는 단순한 금융 시장의 유동성 부족 사태를 넘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이 일시에 폭발한 전대미문의 국가적 재난이었습니다. 외환 보유액 고갈로 인한 국가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한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초고금리 정책, 강도 높은 긴축 재정과 노동 시장의 유연화 그리고 금융·기업 부문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이 강요됐고, 이는 실물 경제에 즉각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8년 한 해에만 2만4000여 개 기업이 도산했고, 실업자 수가 200만 명을 상회했습니다. 중산층이 몰락하고 극빈층이 양산되었으며, 경제적 빈곤은 가정 해체와 생명 경시 풍조로 이어졌습니다. 실직과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한 가장들의 투신자살, 부모의 실직을 비관한 청소년들의 동반 자살, 급격한 이혼율 증가와 결식아동의 양산 등 이른바 ‘IMF형 사회 병리 현상’이 사회 전반을 뒤덮었습니다.
교회의 새로운 소명
이러한 극한의 고통 속에서, 민주화와 인권을 수호했던 한국교회는 이제 신자유주의적 경제 폭력에 의해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구원하고 붕괴된 공동체를 복원하는 시대적 소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가톨릭신문은 IMF 외환위기의 원인을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던 물질주의, 과소비, 허위의식에서 찾았습니다. 교회는 위기의 본질을 ‘가치관의 위기’로 규정하고, 위기 극복 노력이 공동체 전체의 회개와 삶의 양식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인식했던 것입니다.
“교회가 파탄 위기에 처한 국가 경제난을 극복하자는 적극적 선택에 나섰다.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는 최근 경제난 극복을 위한 노력으로 고급 스포츠와 해외여행의 자제, 과소비 근절, 우리 상품 애용 등을 촉구하는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마련, 전 교회 차원의 경제난 극복 운동에 돌입했다. … 신자들의 동참 또한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가톨릭신문 1998년 1월 11일자 1면)
신자유주의 국제 경제 구조의 비판
한국교회는 개인의 도덕성 회복에서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적인 국제 경제 구조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당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박석희(이냐시오) 주교는 IMF 1주년을 맞아 「위기를 기회로 삼읍시다」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담화는 위기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고도성장 위주 경제 정책, 정경 유착에 따른 관치 금융, 기업의 무분별한 차입 경영과 중복 투자 그리고 각자의 도덕적 불감증”에서 비롯됐다며 위기의 근본 원인은 “경제가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정신”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담화는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맹목적인 자유시장경제 체제와 투기적 국제 자본의 횡포에서 위기의 외부적 원인을 찾았습니다. 이어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무한 경쟁으로 개도국과 중진국 경제는 물론 인간과 자연의 파멸을 강요하는 비인간적 체제를 유발하고 있다”며 “자유경쟁을 강조하며 약자의 고통을 외면했던 자유주의에 대응해 마르크스주의가 등장했듯 신자유주의 물결이 새로운 전체주의나 과격주의의 온상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 이끈 한국교회… 종교계와 함께 위기 대응
교회 공적 책임 다해… 사회복지 전반적 역량 이정표 구축
금 모으기 운동으로 자신감을
한국교회의 IMF 외환위기에 대한 대응은 초기에는 위기 극복을 위한 기도운동과 금 모으기 그리고 인식과 삶의 변화를 위한 실천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실직과 빈곤, 가정 해체 문제에 대응하는 사회복지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국민이 보여준 집단적 연대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외채 상환 금 모으기 운동’이었습니다. 39억 달러까지 곤두박질친 가용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기 위해 장롱 속의 금을 자발적으로 내놓은 이 범국민적 희생 운동에서, 천주교회는 기획 단계부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전국적인 동참을 이끌어냈습니다.
1998년 1월 12일 오전 10시30분, 명동 YWCA 강당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송월주 스님, 서영훈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등 종교계와 106개 시민사회단체 대표가 모여 ‘외채 상환 금 모으기 범국민운동 발대식’을 거행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신자들이 선물로 준 것을 모아두었던 금 142.58g을 헌납하며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종교계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은 집단적 패배감에 젖어 있던 국민들에게 위기 극복을 향한 강력한 도덕적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국민이 석 달 동안 모은 금의 총량은 227톤(약 22억 달러 규모)으로, 당시 1500억 달러에 달하던 총 외채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집단적 공포와 패배주의에 빠져 있던 국민에게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붕괴된 사회 안전망의 복원
외환위기가 남긴 가장 뼈아픈 상흔은 대량 해고로 인한 실업과 노숙의 급증이었습니다. 구조조정과 연쇄 부도의 칼바람을 맞은 가장들은 지하철역과 공원 등 거리로 내몰렸지만 이들을 보호할 국가의 복지 안전망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때 교회가 가장 먼저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실직자 지원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은 서울대교구 명동본당이 1998년 4월 13일 정식 개원한 ‘평화의 집’이었습니다. 가톨릭회관의 지하 주차장을 개조하여 실직자들을 위한 대규모 무료 급식 및 취업 상담 시설을 조성했습니다. 1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IMF 후유증이 장기화되고 실직자가 지속적으로 배출되면서 2002년 7월 16일 폐원 미사를 봉헌할 때까지 4년 3개월 동안 운영됐습니다. 누적 이용 건수가 14만 2002건에 달했고, 매년 1500명에 가까운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습니다.
교회의 사회적 위기 대응
1997년 시작돼 수년간 이어진 한국교회의 IMF 대응은 단순한 애국 캠페인 참여를 넘어, 한국교회가 사회적 위기에서 어떤 공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지 시험한 사건이었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은 교회의 ‘상징 자본’(비물질적이지만 사회적 위계와 권위를 만들어내는 자원)을 드러냈고, 평화의 집을 비롯한 교회 내 본당과 단체, 시설 등의 실직자와 가정 지원 활동은 교회의 사회복지 역량을 시험했습니다. 그 결과가 모든 요구를 충족하지는 못했다고 할지라도, 이후 한국교회가 사회적 위기 대응에서 보여줄 수 있는 표준을 상당 부분 이 시기에 형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