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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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주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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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를 만난 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다. 당시 나는 국제평화학을 공부하고 평화 활동에 몰두했지만, 특정 전문가 내에만 머물던 한계와 모순을 고민하며 잠시 멈췄다. 그동안 우연히 둘째 아이의 학교에서 봉사하다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 교육을 비판하더니 교육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하느님께 따지더니 가톨릭교육에서 평화교육을 탐색했다. 결국 나를 겸손히 내려놓게 하는 것은 세계적인 대학도 아니었고, 주님 안에서의 공부였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기는 많은 활동을 집 안에서 하는 비대면체제로 전환됐고, 덕분에 어린아이를 키우던 나는 돌봄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내던 2020년, 성탄을 앞둔 어느 날 고해를 했다. 마침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은 내게 선행을 하라는 보속을 주셨고, 그때 들은 ‘선행’이라는 단어는 유독 어렵게 다가와 무거웠다. 그 의미를 성찰하면서, 개인·가정·사회 차원의 선행 목록을 작성했고 그중에 시작한 것 하나가 교육 봉사였다.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활용해서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했고, 여러 지역에 있던 학교 밖 청소년이라 불리는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학교 안에서보다 더욱 반짝이는 눈빛과 열정을 보았다. 그 반짝임 중에 있던 그 아이,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을 바탕으로 멋진 프로젝트를 기획해 전시를 열었고 나를 초대했다. 기쁜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갔다. 열심히 사는 아이의 모습이 온통 담긴 전시는 정말 뜻깊었다. 같이 사진도 찍고, 카페에서 즐겁게 수다를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말했다. “이렇게 멋진 일을 끝내면, 오늘은 정말 좋단 말이에요. 근데 저는 또 내일 죽을 걸 생각해요.” 숨이 턱 막혔다. 내가 알지 못하던 자살에 관한 이야기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제네바 국제기구에서 무급으로 인턴 생활을 하면서 실직한 가장들의 비애를 짐작해 본 경험은 있지만, 자살에 대한 고백을 이리 담담하게 내 앞에서 얘기하는 현실의 아이를 만날 줄은 몰랐다. 티를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질문과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했지만, 나의 당황함과 어쩔 줄 모름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을 터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자살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조금씩 공부했다. 모르던 삶과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자살 예방 교육도 받았다. 몇 년 후, 다행히 잘 살아내고 있는 이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갑자기 연애를 한다고 고백했다. 너무나 축하할 자리에서 나는 또 당황했다. 성소수자, 내게 모르던 세상을 가지고 다시 온 거다. 아니 몰랐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평화를 공부했던 아일랜드는 가톨릭국가임에도 동성혼이 합법화되었고, 그때 만난 친구의 경험을 통해 이미 감정적으로도 충분히 공감한다고 믿었는데 아니었다. 또 책을 찾아 읽었고, 성소수자를 위한 미사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내게 다른 우주를 자꾸만 가져온다. 우리는 흔한 통념으로 학교를 잘 다니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견디고, 정해진 성으로 살아야 함을 규정으로 여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은 다양한 이슈와 삶의 문제를 지니며, 어떤 이는 더 어려운 상황들을 온통 마주하며 겨우겨우 버틴다. 그런 우주를 나는 이 아이를 통해 만난다. 나의 배움은 사람에게서 온다. 한 사람은 온 우주를 안고 오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우주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선행의 하나일 것이다.

 

글 _ 손서정 베아트릭스(삶을 살리는 평화 교육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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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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