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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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옛 항구 정취 따라 ‘호젓한’ 성당에 다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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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일대를 찾는 여행객이 부쩍 늘었다. 젊은 세대는 물론 가족 단위 여행객도 이 작은 도시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옛 정취를 간직한 어촌 벽화마을부터 탁 트인 동해, 짜릿한 체험 시설까지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항구와 벽화마을, 전망대가 이어지는 길 한편에는 6·25전쟁 때 주임 신부가 순교한 춘천교구 묵호성당도 자리하고 있다.

전망과 액티비티 모두… ‘도째비골’

KTX를 타고 강릉을 지나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묵호역에 도착한다. 묵호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기차역에서 바닷가까지 비교적 가깝다는 것이다. 역에서 10분가량 걸으니 이내 항구와 바다가 펼쳐진다.

묵호항을 지나 해안을 따라 5분쯤 더 걸으면 도째비골 해랑전망대와 스카이밸리 입구가 여행객을 반긴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강원도 방언이다. 도째비골은 어두운 밤 비가 내릴 때 골짜기에서 푸른빛이 보여 마을 사람들이 도깨비불로 여겼다는 구전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해안에 설치된 해랑전망대에서는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바닥 일부가 유리와 철제 그물망으로 만들어져 발아래로 밀려오는 파도와 너울이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언덕 위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바다 풍경과 체험시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지다. 케이블 와이어를 따라 공중을 달리는 스카이사이클과 원통형 미끄럼틀을 타고 약 27m 아래로 내려오는 자이언트 슬라이드도 눈길을 끈다.

도째비골 비탈면에는 ‘동해의 정령’을 형상화한 거대한 얼굴바위가 조성돼 있다. 마을 사람들의 선행에 감동한 정령이 풍랑과 위험으로부터 마을을 지켜 줬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조형물이다. 얼굴바위를 비롯해 도깨비 조형물과 잘 가꾼 정원이 곳곳에 있어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길도 지루하지 않다. 관광객들은 색다른 풍경이 신기한 듯 연신 사진을 찍는다.

해발 약 60m 지점에 설치된 스카이워크에서는 묵호항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투명한 유리 바닥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스릴은 덤이다.


항구의 삶 벽화에 새긴 ‘논골담길’

묵호항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개항했다. 삼척과 태백 지역의 석탄과 동해에서 생산된 시멘트를 실어 나르며 성장했고, 해방 이후에는 동해안의 주요 항구로 자리했다. 오징어와 명태 어업이 활기를 띠던 시기에는 항구와 마을 골목마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어획량이 줄고 동해항이 개항하면서 예전의 활기는 점차 잦아들었다.

그 시절 묵호 사람들의 고단하면서도 정겨운 삶은 ‘논골담길’에 남아 있다. 논골담길은 묵호등대 아래 가파른 언덕에 형성된 마을 골목이다. 항구에서 오징어와 명태를 지게에 지고 나를 때 흘러내린 바닷물로 길이 논처럼 질척거려 ‘논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논골담길은 등대오름길과 논골1길·2길·3길 등 네 갈래 골목으로 나뉜다. 골목의 벽화에는 생선을 나르는 주민과 만선을 기다리는 가족 등 옛 묵호 사람들의 일상과 역사가 담겨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 보면 벽화뿐 아니라 소원의 등대와 카페, 선물 가게, 잡화점, 전시 공간 등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언덕 곳곳의 카페에서는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논골담길 정상에는 묵호등대가 있다. 바다와 묵호항은 물론 멀리 두타산과 청옥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스카이워크와는 또 다른 각도에서 묵호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묵호등대를 비롯한 묵호항 일대는 1968년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바다로 열린 길, 어달삼거리

시간이 허락한다면 논골담길과 도째비골에서 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어달삼거리까지 가도 좋다. 최근 새로운 사진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내리막 도로와 푸른 바다가 한 장면에 담겨 ‘인생샷’을 남기려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다만 어달삼거리는 관광을 위해 조성된 별도의 촬영장이 아니라 주민들이 이용하는 실제 도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차도에 오래 머물거나 차량 통행을 막지 않도록 주의하자.

순교 사제의 기억 품은 묵호성당

묵호역에서 걸어서 7분 남짓한 거리에 춘천교구 묵호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1957년 6월 준공된 성당은 푸른빛이 감도는 청회색 외벽에 흰 장식선이 어우러져 단아한 모습을 뽐낸다. 성모상과 십자가의 길 주변으로 펼쳐진 푸른 잔디밭도 성당 외관과 조화를 이룬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논골담길의 정취와도 닮았다.

성당에는 6·25전쟁 중 순교한 한 사제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묵호본당은 1948년 본당으로 승격됐고, 이듬해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패트릭 라일리 신부(라 파트리치오, 1915~1950)가 제2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라일리 신부가 사목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6·25전쟁이 발발했다.

신자들은 피란을 권유했지만, 라일리 신부는 양 떼를 두고 목자만 떠날 수 없다며 묵호에 남았다. 결국 북한군에 체포된 그는 다른 포로들과 함께 강릉으로 이송되던 중 순교했다.

춘천교구는 전쟁 중 순교한 사제들을 기념하기 위해 소양로와 묵호, 삼척에 성당을 건립하기로 했고, 그 뜻에 따라 현재의 묵호성당도 세워졌다. 본당은 1974년 성당 마당에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비’를 세웠다. 지금도 해마다 라일리 신부의 순교일을 전후해 추모의 날을 지내며 그의 삶과 순교 정신을 기리고 있다. 라일리 신부는 한국교회가 시복을 추진하고 있는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 중 한 명이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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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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