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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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학교의 이상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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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그렇게 성당에 가요?” 평화를 찾아다니다 어느덧 매일미사가 일상이 된 어느 날, 처음 받은 어버이날 편지에 꾹꾹 눌러쓴 아이의 글씨는 내 맘에 또렷이 새겨졌다. 그러게, 그렇게 가던 성당에서 만난 주보 안의 가톨릭 학교 간지는 내 맘을 또 가로챘다. 어떻게든 살아낼 스펙을 쌓겠다고 유명 대학원 원서를 쓰던 그때, 하느님에 대한 궁금함이 세상의 이치를 이겼다. 

결국 돈 안 되는 공부를 하러 대출을 받아 가톨릭 대학원에 입학했다. 처음으로 스스로 찾은 학교, 함께하는 동료들의 지식에 감탄하며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는 즐거움에 마냥 기뻤다.

아이를 키우던 나는 교육을 중심으로 탐구했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오가는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과제를 썼다. 내 지도교수가 된 신부님은, 그런 내가 아이에게 읽어 준 그림책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도 칭찬하는 ‘고래도 춤추게 하는’ 분이셨다. 그런 분께 “신부님도 60년대생이시죠?”라며, 내가 존경하던 세대의 이중성에 대한 실망을 투사하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엉뚱한 힐난에도, 깜짝 놀란 눈으로 곰곰이 새기시던 맑은 눈빛이 떠오른다.

또 성인의 영성에 대해 강의하던 한 신부님께는 장문의 항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호기심을 결코 참지 못하는 내가 한 질문에, “여러분 수준에서는 아직 몰라도 돼요”라고 한마디하셨던 탓이다. 거센 질책을 보냈는데, 정중하게 사과를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철저하게 가난을 사는 영성의 대가셨다. 내가 만난 첫 가톨릭 학교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가톨릭 학교, 평화교육과 연구를 위해 교사로 갔던 학교에서 오히려 학부모로서의 감탄을 안고 돌아왔다.

내가 갔던 가톨릭계 일반 고등학교는 큰아이가 다니던 학교와는 정반대였다. 동물을 좋아하던 큰아이는 방학 중에도 매일 학교에 가서 실험을 하더니 전국 1등으로 국제대회에 나갈 정도로 과학에 열중했다. 그런데 담임과의 상담에서 들은 한마디는 나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다른 학교에 갔다면, 참 사랑받았을 텐데요.” 이게 무슨 뜻이지? 그럼 지금 학교에서는 아이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인가? 교사의 말인즉슨 명문대 입학 요건이 부족한 아이에게 관심을 둘 수 없단 뜻이었다. 과학 중점 학교지만 과학보다 성적이 중요했고, 인간보다 성과가 먼저였다.

그런데 내가 갔던 가톨릭 학교는 달랐다. 꼴찌를 하고, 학교를 빠지며, 말썽 피우는 아이를 위해 밤낮없이 고민했다. ‘그 누구도 저버리지 않는 교육’을 실현하는 공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수녀님과 교사의 모습에 그저 눈물이 났다. 

그 경험 덕분에 가톨릭의 ‘가’자만 들어도 도망치던 둘째 아이를 겨우 얼러서 가톨릭 학교에 지원했다. 운 좋은 아이는 추첨이 되었고, 싫다던 기숙사 체험에 가자마자 축구화를 보내 달라며 신이 났다. 철학 교사인 신부님을 보고 “저렇게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똑똑한데, 왜 신부가 됐는지 이해가 안 간다”더니 그 신부님이 좋아서 견진성사를 받았고, 가장 행복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다.

가톨릭 학교에서 나는 실력도 태도도 엉망인 꼴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하고 달래며 응답하는 이상한 사람이 가톨릭 학교에는 가득했다. 그런 이상한 사람들 덕택에, 가톨릭 학교는 내 교육 ‘맛집’이 됐다. 맛집이 붐비는 건 좀 아쉽지만, 맛난 건 같이 나눌수록 더 좋다는 걸 이제는 좀 알게 되었다.

글 _ 손서정 베아트릭스(삶을 살리는 평화 교육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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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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